또 무산된 '외국인 총수 지정'

박상영 기자 2022. 8. 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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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통상 마찰 우려’ 요구에
공정위 시행령 개정안서 제외
쿠팡 김범석 의장 등 ‘규제 사각’
외국 국적 총수 2·3세 계속 늘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동일인) 지정 개편 방향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10일 발표했다. 하지만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또 빠졌다. 통상 문제를 우려한 부처 내 이견을 넘지 못했기 때문인데, 외국 국적인 총수 2·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공정위는 외부용역 등을 실시하면서 외국인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총수 지정 여부에 따라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적용 범위도 정해진다.

사익편취 규제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한 방법으로 총수일가가 부를 늘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총수가 자연인일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명백한데도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명확한 요건이 없어 제외됐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마찰을 우려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하면서 개정 작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외국인의 총수 지정이 사실상 불가능함에 따라 내년에도 공정위는 쿠팡 총수를 ‘자연인’ 김범석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구체적으로 통상 마찰 가능성이 제기되지 않았는데도 제도 개선을 미룬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산업부는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가능성에 대해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당국자는 “FTA 위반 가능성이 있다기보다 공정위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특히 미국 측으로부터 미국인 김 의장의 총수 지정과 관련해 어떤 의견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통상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도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통상 마찰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을 차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정당한 규제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외국계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낮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주주인 에쓰오일의 경우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람코가 국영기업인 이유가 더 크다.

현재 대기업 총수 2·3세 중 외국 국적자가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는 일본 국적자다. 신씨는 최근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도쿄지사 영업·신사업 담당 미등기 비상근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경영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는 해석을 불렀다.

공정위도 외국 국적을 보유한 총수 2·3세가 상당수 있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공정위 당국자는 “현재 알려진 사례는 롯데만 있지만 상당수 그룹의 총수 2·3세가 외국 국적자인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번 제도 개선은 국내에 거점을 두고 회사에서 총수일가 사익편취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했기 때문에 관계부처와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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