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은 서로 '진짜 사장' 떠넘기기..하청노동자들만 '눈물'

조해람 기자 2022. 8. 1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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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선 "권한·능력 없다"
'열쇠' 쥔 원청은 묵묵부답
대법 판례에 정치권 '미적'
노동계, 노조법 개정 촉구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10일 간접고용 노동자 교섭권 쟁취를 위한 노조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양천구 이화여대의료원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주차장 한구석에 있다. 맞은편은 목공소다. 차량 소음과 매연, 목공소 소음 때문에 편히 쉴 수 없다.

참다못한 청소노동자들이 개선 요구를 했으나 의료원은 이를 거부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의료원 소속이 아니라 하청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였다.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상대로도 교섭을 시도했다. 주 6일 하루 7시간의 육체노동을 남들처럼 ‘주 5일’로 해달라는 요구였다. 2020년 첫 단체협약을 이뤄냈지만 그해 연말에 용역업체가 바뀌어버렸다. 일하는 장소와 업무와 사람은 그대로인데 회사만 달라졌다. 단협을 원점에서 새로 해야 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비용 증가에 난색을 보였다. 원청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였다. 우미영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새봄지부장은 “원청에 이야기하면 하청에 말하라 하고, 하청에 이야기하면 원청에서 해줄 문제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우리는 누구에게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나”라고 했다.

하청·용역 등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일터의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을 개정해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노동조건을 진짜 사장과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다시 불거졌다. 당시 노동자들은 열악한 임금과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했지만, 하청 협력업체들은 권한과 능력이 없었고 ‘열쇠’를 쥔 원청은 묵묵부답이었다.

대법원 판례와 노동당국의 결정은 원청이 노조법상 ‘진짜 사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서 “사용자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명확한 해법을 내지 않으면서 하청노동자만 어려운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원청이 노동조건 등 비용이 드는 일은 모르쇠하면서,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손해배상 소송 등 조처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조법 제2조 2항에 규정된 ‘사용자’를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 지배력과 결정권을 가지는 자’까지 포함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조항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한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현행 규정을 ‘진짜 사장’까지 명확하게 포괄토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원청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교섭에 나서도록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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