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녹화사업'서 프락치 활동 거부한 한희철을 아시나요

이홍근 기자 입력 2022. 8. 1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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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녹화·선도공작 관련 존안자료' 입수
한희철씨가 YMCA 총무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한 편지(왼쪽)와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한씨의 존안자료 갈무리.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제공
보안사, 한씨 군 복무 중 끌고가 ‘운동권 동료 밀고’ 강요
고문당한 사실 ‘편지·유서’ 남기고 부대에서 극단적 선택
‘녹화공작 대상자로 입대’ 김순호 경찰국장과 엇갈린 삶

“주민등록 용지 3~4장만 마련해라. 내가 한두 달 안으로 제대하게 될 거 같으니 그것에 사진도 붙이고 해서 만들어 보자.”

서울대 공대 4학년생 한희철씨는 군에서 복무하던 1983년 10월 학생운동 동지 A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5·18민주화운동에 가담해 수배받던 대학생들이 주민등록증 일제갱신으로 신군부에 붙잡힐 위기에 처했으니 위조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5일 A씨가 헌병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한씨의 편지가 군의 손에 들어갔다. 한씨는 즉시 녹화공작사업(운동권 인사의 이념을 바꿔 ‘프락치’로 활용하는 대공 활동) 대상자로 ‘발굴’됐다. 이날부터 3일간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감금돼 곤봉으로 고문당한 한씨는 운동권 동료들에 대한 진술을 강요당했다. 군이 자신을 ‘프락치’로 활용하려 하자 한씨는 총기를 사용해 생을 마감했다.

경향신문은 10일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대책위)를 통해 입수한 한씨의 존안자료를 살펴봤다. 한씨의 존안자료는 김순호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의 존안자료와 함께 국가기록원에도 보관돼 있다. 김 국장은 1983년 녹화공작 대상자로 입대한 뒤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의혹,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존안자료에 따르면 1983년 12월8일 한씨는 보안사로 끌려가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폭행에 사용된 도구는 80㎝ 길이의 곤봉이었다. 보안사는 한씨를 끌고간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한씨는 추후 유서와 함께 작성한 ‘성남YMCA 총무에게 드리는 글’에서 “전혀 무슨 일 때문인지 영문도 모르고 갔고, 제가 그간 해온 운동이라는 것도 특별히 현실적인 행동을 한 사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간 운동을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을 저들이 잘 알 리 만무하다는 생각만 하며 가게 되었다”고 적었다.

보안사는 한씨가 동료를 밀고하길 바랐다. 그러나 한씨는 밀고를 거부했고 수차례 자해를 시도했다. 결국 한씨는 “확인하면 다 나타날 부분”만 진술하기로 했다. 40장에 걸친 진술서와 반성문에는 주로 본인의 운동 활동과 동료들을 위한 변이 담겼다.

한씨는 12월10일 소속 부대로 돌아와 펜을 들었다. 자신이 보안사에서 고문당한 사실과 진술 내용, 심경을 편지에 담았다. 한씨는 당일 새벽 편지를 소속 부대 이병에게 건네며 “YMCA 총무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으면 소각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이튿날인 11일 새벽, 한씨는 근무를 바꿔 오전 4시부터 오전 5시30분까지 경계근무를 서겠다고 자원했다. 근무신고를 하고 실탄 15발을 지급받은 한씨는 오전 4시35분경 유서를 남기고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은 한씨의 사망 원인을 은폐했다. 취조의 주된 내용이 운동권 동료들에 관한 내용이었음에도 주민등록증 절취 지시에 따른 연행이라고만 했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사실은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은폐했다. 사단 헌병대는 한씨가 보안사에서 조사받은 사실 자체를 감추려고 했다.

한씨의 사건은 1984년 한국기독교학생회총연맹, 대한가톨릭대학생 전국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5개 단체가 녹화공작을 공론화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씨의 유족은 지난해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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