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드 3불 1한, 정치적 선서했다"..한국과 입장차

유신모 기자 2022. 8. 1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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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국가 간 합의 아니다'와 달라
'칩4' 이견 등 한·중관계 난관 예상

윤석열 정부의 첫번째 고위급 방중으로 이뤄진 지난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새로운 한·중관계의 흐름을 짐작하게 해주는 중요한 이벤트로 평가된다. 이번 회담은 새로운 합의나 의견일치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경제·안보·역내 정세 등 현안에 대해 각자 설정한 지향점과 입장을 확인하고 접점을 찾아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회담을 통해 양국 간 민감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중관계 5원칙 제시한 중국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왕 부장은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외부간섭을 받지 말 것, 선린우호를 견지하고 상호관심사를 배려할 것, 개방과 상생을 위한 안정적이고 원활한 생산·공급망을 유지할 것, 내정 불간섭을 견지할 것, 다자주의와 유엔 헌장의 목적·원칙을 준수할 것 등을 내세웠다.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공격적이다. 독립자주란 미국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며 상호관심사 배려는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다.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은 용납할 수 없으며,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도 전한 것이다. 왕 부장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의도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오디언스(청자)’로 삼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익과 원칙에 따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중국과 협력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점, 다투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박 장관은 또 ‘인류보편적 가치와 규범’ ‘자유’ ‘상생’ 등을 언급했다. 양국 장관의 발언은 양국관계에서 핵심 쟁점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향후 한·중관계의 전개 방향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칩4에 대한 중국의 입장 불변

박 장관은 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대만의 이른바 ‘칩4’(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에 참여할 것임을 알렸다. 한국이 칩4에 초기단계부터 참여해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의 협의체로 가는 것을 막는 데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드 포대 정상화 땐 한·중 충돌 불가피

하지만 칩4가 미국의 의도대로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하기 위한 전략적 협의체가 되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은 변한 것이 없었다. 중국이 한국 참여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않은 것은 아직 칩4가 구상 단계여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참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한국이 그 안에서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외교소식통은 “칩4를 둘러싼 갈등은 아직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놓고 향후 전개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면서 대응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드 ‘한·중관계 뇌관’ 재확인

이번 회담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가 한·중관계의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 요소임을 재확인하게 해줬다. 박 장관은 이른바 ‘사드 3불(不)’이 국가 간 합의도, 약속도 아니고 전임 정부 때 결정된 것이므로 구애받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국가 간에 협의된 내용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국 외교부는 10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3불(不) 1한(限)’의 정치적 선서를 정식으로 했다”며 윤석열 정부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3불 외에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을 제한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당초 공약은 사드 추가배치였지만 정부 출범 이후 이를 뒤집고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의 운용을 정상화하는 작업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 공개적으로 ‘3불 1한’을 언급함에 따라 정부가 기존 사드 포대의 정상화에 착수할 경우에도 한·중 간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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