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통령의 재난 지휘소

오창민 기자 입력 2022. 8.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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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왼쪽)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에 의문이 제기되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어디서나 보고를 받으시고 지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대통령 계시는 곳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이라고 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도 10일 라디오에 나와 “대통령이 계신 곳이 곧 상황실”이라고 말했다. 기록적 폭우로 서울 강남 일대가 침수돼 윤석열 대통령이 서초동 사저에 고립되는 바람에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반박한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대통령 있는 곳이 집무실이고 상황실이다. 대통령이 타면 그 비행기가 ‘공군 1호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24시간 365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시간을 집무실이나 상황실에서 보낼 수는 없다. 대통령도 사생활이 있고, 휴가도 가야 한다. 그러나 중요 사안이 발생하면 최단 시간에 정위치해서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신속하게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설명과 달리 박근혜씨는 2014년 4월16일 오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할 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오후 여느 때처럼 서초동 집 아크로비스타로 퇴근했다. 기상청은 당일 오전 6시부터 서울과 인천, 경기, 강원 지역에 호우경보를 내리는 등 20건이 넘는 기상 특보와 속보를 내보냈다. 윤 대통령이 사저로 들어서던 때 서초동 일대가 이미 침수되고 강남역 4거리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살던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물이 차오른 것도 그즈음이다. 강 수석은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냐”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자신의 아파트를 재난 지휘소 삼아 전화로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지시한 것이 과연 시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일까.

말이 너무나 가벼워지는 세태가 우려스럽다. 이러다간 아이들이 시험 전날 게임방에 간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학생이 있는 곳이 곧 독서실입니다. 게임방이든 어디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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