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실험' 흑인 유골 200년 만의 장례.. "인종차별사 청산"

장수현 2022. 8. 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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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우생학자에게 유해마저 착취당한 흑인들이 200년 만에 흙으로 돌아가게 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펜박물관)이 속죄의 의미로 실험 대상이었던 흑인 유해 13구의 전시를 중단하고 장례 치르기로 결정하면서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총 3만3,000여 개의 유해를 갖고 있는데, 이 중 1,700구가 흑인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장례를 포함한 과거 청산을 박물관이 아닌 유해의 후손과 흑인 공동체가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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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박물관, 흑인 유해 13구 장례 결정
19세기 '우생학자' 새뮤얼 모턴이 수집해
55년간 전시하다 학생들 항의로 중단
"과거 청산 주체, 박물관 아닌 후손이어야"
지난 2018년 8월 29일 독일 정부가 나미비아로 헤레로족 유해를 송환하기 전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유해들을 전시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습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백인 우생학자에게 유해마저 착취당한 흑인들이 200년 만에 흙으로 돌아가게 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펜박물관)이 속죄의 의미로 실험 대상이었던 흑인 유해 13구의 전시를 중단하고 장례 치르기로 결정하면서다. '인종차별 흑역사 청산' 차원이다.


생체 실험 후 전시된 유해…학생들이 철회 이끌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2020년 6월 2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베데스다=AF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는 펜실베이니아대가 올해 가을 흑인 유해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묘지에 묻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학 캠퍼스에 추모비를 세우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유해 13구는 모두 19세기 중반 우생학자 새뮤얼 모턴에게 생체 실험을 당한 피해자들이다.

펜실베이니아 의대 교수였던 모턴은 인종별로 지능이 다르다고 주장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두개골을 해부해 "백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뇌 용적이 더 크기 때문에 지능이 뛰어나다"고 합리화했다. 이후 진화생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모턴이 자신의 가설에 맞는 두개골만 골라 분석해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모턴이 실험을 위해 수집한 1,700개가 넘는 두개골 중 상당수는 흑인 노예들의 것이었다. 피해자 중 일부는 모턴과 알고 지낸 사이였고, 시신을 실험에 이용하겠다는 본인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지난해 모턴의 두개골 수집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폴 미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자는 "모턴의 유해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의학적, 과학적 인종차별의 폭력적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설명했다. 펜박물관은 1966년부터 '모턴 두개골 전시'를 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주도한 건 펜실베이니아대 학생들이다. 2020년 펜박물관에 전시된 두개골 중 50구가 아프리카에서 쿠바로 납치된 흑인 노예들의 것이란 사실을 밝히고, 후손에게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해 '흑인 생명권 운동(Black Lives Matter)'까지 겹치자 부담을 느낀 박물관은 모턴이 수집한 모든 두개골의 전시를 철회했다.


"인종차별사 속죄의 시작되길"

펜박물관의 결정으로 각국 대형 박물관들도 윤리적 압박을 받게 됐다. 프랑스 파리의 인류박물관, 독일 베를린의 국립인류학박물관 등도 출처 불명의 인간 유해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총 3만3,000여 개의 유해를 갖고 있는데, 이 중 1,700구가 흑인의 것으로 추정된다. 펜박물관 대변인은 영국 가디언에 "이번 장례식이 앞으로 계속될 속죄와 회복의 첫 단계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장례를 포함한 과거 청산을 박물관이 아닌 유해의 후손과 흑인 공동체가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수십 년간 유해를 전시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박물관이 치유 과정의 주체가 되는 건 위선이라는 이유에서다. 펜박물관 유해 송환 자문위원인 압둘 알리 무함마드는 "펜박물관은 후손 공동체를 이 과정의 증인으로 삼을 뿐, 참여자가 되지는 못하게 한다"며 시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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