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지금이 개헌의 적기일까

2022. 8. 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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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김진표 국회의장이 취임 직후부터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35년을 묵혀온 개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 야당이 개헌을 빌미로 정국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개헌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35년이 경과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난 35년은 서구 선진국의 100년 세월에 맞먹을 정도의 압축성장을 경험한 세월이며, 그동안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는, 이른바 시대정신에 맞는 새 헌법의 필요성은 널리 공감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에 대해 소극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대통령의 임기말 개헌 시도는 노무현 대통령 이후 계속 실패한 반면에, 임기초의 개헌 시도는 역대 대통령이 모두 선호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처럼 개헌논의 속에서 대통령의 정국주도권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둘째, 개헌은 여야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화 이후 최대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도 독자적 개헌안 발의는 가능해도 개헌안 의결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야의 불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셋째, 과거의 개헌 실패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의 실패와 2018년 대통령 개헌안의 부결 이후에 개헌안 발의 자체가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 거국적 측면에서 생각하면 역시 개헌은 필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행헌법의 시스템, 이른바 87년 체제가 안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현행헌법은 단순히 1987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이라는 당시의 화두에 충실한 개헌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완화되었지만- 개발독재 시절의 헌법 시스템을 크게 변경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1960~8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따라 빈약한 자본과 인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국가주도의 성장정책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졌고, 결과적으로도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 시스템은 현행헌법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독재 시절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맞는 것일까? 과거와 비할 수 없는 자본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는 수많은 인재들과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정운영은 청와대 중심의 원톱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국민의 기본권보장의 강화 내지 정보인권 등 새로운 인권의 명시도 새 헌법의 중요한 과제이다.

헌법은 국정운용의 기본 시스템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시스템을 가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국회와 정부가 세계로 진출하는 국민들과 기업들의 경쟁을 적절하게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합리한 규제로 발목을 잡는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문제는 대통령의 문제, 혹은 국회나 장관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시스템부터 손질해야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실적 여건이 개헌에 유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개헌을 통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현실적 여건도 달라지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합리화하는 것에 임기 초부터 찬성할 대통령은 흔치 않다. 그렇다고 개헌을 앞으로 35년 더 미룰 것인가? 승자독식의 시스템에서는 여야의 경쟁은 발목잡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여야 합의를 통해 승자독식이 아닌 선의의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꿔야 불신을 해소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2017년 국회 개헌특위로부터 5년이 지났다. 현행헌법 이전 헌법들의 평균수명에 비추어 보면, 이미 헌법개정이 한 차례 되었을 시간이다. 이제는 눈앞의 난관을 극복하고 정말로 국민을 위한 헌법,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헌법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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