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홍대·연남동에서의 글로벌한 언어 소통, 그리고 그 이면

한겨레 2022. 8.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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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한국인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어우러져 다양한 언어생활을 하는 글로벌한 분위기의 서울 홍대 앞 거리. 사진 로버트 파우저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에어비앤비를 통해 서울 연남동 옥탑방에서 묵었다. 그사이 일상회복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5월 초만 해도 홍대와 연남동 인근에서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6월이 되자 주말 인파는 대단했고 외국인도 부쩍 늘었다.

외국인들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면서 이 지역의 흥미로운 언어 환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대와 연남동은 한국의 어떤 지역보다 ‘글로벌’하다. 외국인과의 교류 역사가 긴 이태원이나 외국인이 많이 사는 안산이 훨씬 더 ‘국제적’이긴 하지만, 홍대와 연남동만큼 ‘글로벌’한 느낌은 크지 않다. 두 단어는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같지 않다.

‘글로벌’은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널리 퍼진 말이다. 핵심은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라 자본과 물질, 나아가 사람들의 흐름을 막는 장벽을 없앤다는 데 있다. 자유화를 통해 형성한 새로운 시장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기대가 내포돼 있다.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돼온 국가 중심 세계질서를 약화시키고 글로벌 대기업이 사업하기 편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게 목표다. 이에 비해 ‘국제적’이라는 말은 ‘국’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 중심 세계질서를 전제한다. ‘국제적’이라는 말이 국가 개념을 수호하려는 입장이라면 ‘글로벌’은 그 개념에 대해 다분히 공격적이다.

홍대와 연남동은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상권으로 등장했다. 그런 이유로 글로벌 기업 체인점과 여러 문화의 혼합, 혼종을 추구하는 ‘인디’ 성향의 공간이 공존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야말로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이유다. 대한민국 서울이긴 하지만 지역의 정서는 그 어디도 아닌 매우 글로벌한 세계에 속해 있다.

그 때문에 언어를 둘러싼 환경 역시 매우 글로벌하다. 압도적으로 한국어가 많이 들리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유쾌하다. 매장에 가면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웃고 즐기는 일행들의 대화는 다양한 억양과 발음의 한국어와 영어로 이뤄진다.

몸과 몸짓, 휴대전화기 역시 표현 행위의 도구로 적극 활용된다. 매장 주인부터 손님까지 화려하게 문신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자체로 글로벌하고 힙한 문화에 속해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유지하는 웃는 표정은 마스크 너머로도 쉽게 알 수 있다. 휴대전화기는 멀티모달(multimodal) 소통 도구로 말과 문자를 통한 채팅은 물론 사진과 영상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대화 중에 휴대전화기를 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상대방의 발신을 즐겁게 받으면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모드로 마음껏 발신한다. 서로 마주 앉은 이들끼리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공유하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곳에는 원어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 외국어 교육에서 강조해온 원어민의 특권이 이곳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굳이 영어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지 않아도, 한국어 원어민처럼 한국어를 하지 않아도 이곳에서는 의사소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자주 들렀던 태국(타이)식당 종업원은 태국인이었다. 손님은 한국인도 많지만 다른 외국인도 많았다. 공용어는 한국어지만, 이들의 한국어 발음과 실력은 각양각색이다. 이들은 서로를 향한 유쾌한 태도를 바탕으로 메뉴판 사진을 통해서도 손쉽게 음식을 주문하고 즐겁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발음이나 문법이 아닌 태도와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학교에서 정한 절대적 기준이 아닌 글로벌한 분위기에 맞는 표현 행위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홍대와 연남동의 언어 환경을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가를 초월하고 싶은 세계시민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글로벌화로 인한 새로운 지배구조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글로벌한 언어 환경이 요구하는 유쾌함에 맞추기 위해 개개인의 개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유쾌하기만 하다. 그런 유쾌함을 기본으로 장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정말 유쾌한 것일까? 또한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수로 들고 있어야 하는 휴대전화기를 통해 대부분의 대화가 데이터로 저장된다면, 유쾌한 표정의 우리 모두가 관리하기 쉬운 사이보그처럼 되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그렇다면 홍대와 연남동 골목마다 울려퍼지는 웃음은 그 이면까지 과연 유쾌하기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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