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정책의 이념화를 경계한다

한겨레 2022. 8.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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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오후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시찰한 뒤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최근 경제안보가 세상의 화두가 됐다. 경제안보라는 개념도 생소한데, 간단히 말하면 공급망 단절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안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국가 안위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부족, 요소수 대란, 유럽의 가스 부족 위험 등을 보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주요국들은 공급망 안정을 위한 경제안보 정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도 지난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기구를 만들었고 현 정부는 대통령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했다.

공급망 교란의 원인은 정치적 목적의 무역 제한,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나 전쟁, 강대국 간 전략적 견제 등 다양하다. 근본적으로는 생산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글로벌화된 게 원인이다. 국가 사이 경제적 상호의존은 비교우위를 이용한 효율의 원천이지만, 역으로 상대에 대한 위협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묘책은 없다. 핵심 물품의 재고 확충이나 국내 생산 증가가 방안이 될 수 있다. 공급처 다변화나 우방국 내 생산 확대, 즉 프렌드쇼어링이 도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방법도 완벽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의 희생과 비용을 수반한다. 사전에 위험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위기 발생 시 정부의 집행력과 민관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은 어떤가? 한마디로 이 문제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로 협소화시키고 있으며, 실용보다는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나토 정상회담에서 경제수석의 ‘탈중국시장’ 발언이나, 한-미 간 소위 가치동맹 차원에서 공급망 안정 문제에 접근한 것이 그 징후다. 경제안보 정책의 이념화는 국내 정치적으로는 어떤 이득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의 이념화를 막기 위해서는 몇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

먼저 최근 미-중 간에 엉켜 있던 공급망이 해체되어 둘로 분리된다는 뜻의 디커플링 개념이 유행하는데, 공급망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 무역과 투자를 통해 양국 기업들은 서로 긴밀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일부 디커플링 경향에도 불구하고 상대국에서 사업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로비는 치열하다. 우리 앞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 양자택일의 문제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부 언론의 자극적 언사일 뿐 사실이 아니다. 정책을 책임진 정부마저 이렇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둘째, 미국이 우리에게 공급망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도 아니다. 미국은 자신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시기 의료장비와 반도체 부족이라는 심각한 공급망 위기를 겪었고, 지금도 비슷한 문제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바이든 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이 문제의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 ‘칩4’ 참여 요청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것을 마치 우리가 선택을 강요당한 것처럼 대응하면, 우리 스스로 협상력을 포기하고 전략적 선택 공간을 줄인다.

셋째, 미국 공급망을 지원하고 거기에 편입되는 것이 우리의 경제안보 정책일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의 공급망 전략과 방안들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 묘책은 없으며 앞에서 말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의 핵심 투자지역인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개방적 무역질서의 재건을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역설해야 한다. 우리의 정책방향이 확고해야 미국이든 중국이든 상대에 대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갖고 있다. 이것은 경제안보 시대에 우리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정책을 부정하기보다 활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공급망 안정을 위해서도 아세안 중시의 신남방정책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책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부정과 차별화에 대한 집착은 정책적 선택지를 줄이고, 정책을 실용이 아니라 이념에 묶어둘 위험이 크다. 최근 정부 지지도 하락 원인 중 하나도 이런 집착이었다. 지난 석달간 경제안보 정책에서도 그런 위험이 농후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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