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춤추는 가족'..36년만의 나들이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입력 2022. 8. 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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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12일 개막]
은지화 27점 등 90여점 선보여
'닭과 병아리'·'물놀이..' 첫공개
1940~50년대 작가의 삶 엿볼수도
이중섭이 1953~55년 무렵 그린 '춤추는 가족'이 1986년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36년 만에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중섭'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서울경제]

아내와 아들의 손목을 움켜쥐고 덩실거리는 콧수염 난 아버지는 이내 노래라도 부를 듯 흥겨운 표정이다. 아이들도 신나는 지 꺾일 듯 고개를 젖히고 웃는다. 이 모습이 흐뭇하기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세나 구조로 보아 조금 어색하게 찍혔지만 그녀의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행복한 이 순간을 두 눈에, 영원히 담아놓으려는 듯하다.

요절한 비운의 천재 화가, 소(牛)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했던 민족화가,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그림으로 승화한 화가···.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르는 이중섭(1916~1956)이 1950년대 전반(1953~1955년 추정)에 그린 ‘춤추는 가족’이 36년 만에 전시장에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해 12일 개막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통해서다.

이중섭이 1950년대 전반에 그린 '닭과 병아리'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중섭'을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삼성가(家)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은 104점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도자기가 주를 이루는 파블로 피카소, 판화가 상당수 포함된 유영국에 이어 단일 작가로는 세 번째다. 이중섭의 아이콘과도 같은 ‘소’ 그림 하나 없던 미술관은 이 기증을 계기로 ‘황소’ ‘흰 소’와 소 드로잉 한 점을 소장하게 됐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의 이중섭 작품 80여 점에, 미술관이 기존 소장하고 있던 작품 10점을 더해 총 90여 점을 선보인다.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은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호암갤러리가 1986년 기획한 이중섭 30주기 특별전에 선보인 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전시에는 유화 41점, 은지화 70점, 엽서화 80점 등 총 241점이 출품됐다. 현재 파악된 이중섭의 유작이 670여 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였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이중섭을 존중해 그의 작품을 많이 수집했다. 당시 전시를 계기로 이 회장이 은지화와 엽서화를 다량 소장한 배경에는 유족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컸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중 이중섭의 은지화는 27점, 엽서화는 41점(40건)에 달한다.

이중섭이 1950년대 전반에 그린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중섭'을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가 있다. 평양 태생으로 일본에서 유학하며 미술을 공부한 이중섭은 소 뿐만 아니라 새도 즐겨 그렸다. 그 중에서도 닭은 1943년 일본에서 돌아와 원산에서 지내는 동안 직접 기를 정도로 열중했다. 흰 어미닭이 노란 병아리 두 점을 거느린 ‘닭과 병아리’는 활달한 선(線)이 특징이며, 크게 강조된 닭발과 강렬한 표정 등이 시선을 끈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 ‘물놀이 하는 아이들’도 전시되기는 처음이다. 거친 붓질로 물감을 덧칠해 만든 뿌연 질감이 물보라처럼 느껴진다. 살결이 발갛게 그을린 아이들을 담고 있다.

전시는 1940년대 작품과 1950년대 작품으로 크게 나뉜다. 이중섭은 1950년 한국전쟁을 피해 월남하면서 초기작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일본 유학 중이던 1939년에 만나 훗날 부부가 되는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게 1943년까지 보낸 다수의 엽서화가 남아있어 작가의 시기별 경향을 추론하게 한다.

피난민이 되어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오가며 작업하던 이중섭은 1952년 장인의 타계와 그에 따른 아내의 유산상속을 이유로 처자식을 일본에 보낸다. 실제 이유는 생활고였다. 악착같이 그림을 그리며 가족과 다시 만날 날을 꿈꾸던 시절 탄생한 것이 담뱃갑 속 은지를 철심으로 긁어 그린 ‘은지화’다. 1953년 임시 선원자격을 얻어 단 일주일동안 일본을 방문할 수 있게되자 이중섭은 은지화 한 뭉치를 챙겼다. “은지화 70장을 아내 손에 몰래 쥐어주며 ‘나중에 벽화같은 큰 작업을 할 것이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잘 간직하라’고 했다고 한다”는 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손바닥 만한 은지화 27점과 함께 선보인 대형 은지화 영상작업이 작가의 꿈을 이뤄준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2일 개막하는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중섭' 중 은지화 전시 장면. /조상인기자

이중섭은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전시는 △새와 닭 △아이들 △소 △가족 등 소재별로 구성됐다.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쓸쓸한 심경이 담긴 말년작 ‘정릉 풍경’ 등도 만날 수 있다. 내년 4월23일까지.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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