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소리와 함께 골짜기 전체가 무너져 내려"..산사태로 쑥대밭 된 횡성 '매더피골'[현장에서]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윤희일 선임기자 입력 2022. 8. 10. 17:37 수정 2022. 8. 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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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강원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농막과 창고 등의 시설물이 파손된 가운데 횡성소방서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곳곳을 살피며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 최승현 기자

“새벽에 ‘꽝’하는 소리가 나 밖으로 뛰쳐나와 보니 삽시간에 골짜기 전체가 무너져 내렸어요.”

10일 오전 강원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의 ‘매더피골’ 마을에 들어서자 산사태로 떠밀려 온 토사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창고 건물은 폭격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파손된 채 흙더미에 매몰돼 있었다. 계곡에는 거친 물살에 쓸려 껍질이 벗겨진 고목들이 널브러져 있어 산사태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7가구 8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매더피골 마을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이날 오전 3시 30분쯤이다. 산꼭대기 쪽에 집을 짓고 사는 김용상씨(70)는 “자정쯤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일부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해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데 3~4시간 후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산사태로 인해 폭 4m의 길이 있었던 골짜기 500m 구간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아랫마을 계곡 쪽으로 밀려 내려갔고 집 앞에 있던 들깨밭 1485㎡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32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이 마을은 일순간 쑥대밭으로 변해 버렸다. 산사태로 발생한 토사는 컨테이너 농막 2동을 비롯해 창고와 차고 각 1동 등 4개 시설물을 계곡으로 쓸어버렸다. 차량 2대도 파손됐다. 산사태로 인해 마을과 계곡으로 쏟아져 내린 토사의 양은 수천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불이 난 자리는 있어도 물이 난 자리는 없다’는 옛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생활하다가 6년 전 매더피골에 집을 짓고 귀촌한 이명규씨(64)는 “새벽에 번개가 치고 정전이 돼 손전등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와 보니 차고와 차량이 토사에 휩쓸려 없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산사태로 인해 밀려 내려온 토사가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들이치면서 집을 덮쳤다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지도 모른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오전 5시쯤 주민들로부터 고립돼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횡성소방서 119 구조대와 횡성군청 공무원들은 굴착기 등을 동원해 마을 입구 쪽에 쌓여 있던 토사와 나뭇가지, 진흙더미를 제거하고 3시간여 만에 진출입로를 확보했다.

119 구조대원들은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진흙더미를 헤치면서 마을로 진입해 산릉선을 타고 매더피골 윗마을까지 들어가 고립돼 있던 주민들을 모두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일부 구조대원들은 놀란 주민들을 등에 업고 나오기도 했다. 김숙자 횡성소방서장은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일단 주민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킨 후 정확한 시설물 파손 현황 등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0일 오전 강원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농막과 창고 등의 시설물이 파손된 가운데 횡성소방서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둘러보며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최승현 기자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는 강원도 곳곳에 피해를 남겼다. 이날 오전 5시 49분쯤에는 홍천군 북방면 북방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1채가 일부 파손됐다. 오전 2시 24분쯤 홍천군 북방면 도사곡리에서도 산사태가 우려돼 5가구 주민 10명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9일 낮 12시 54분쯤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주택 한 채와 창고를 덮쳐 주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최근 300~400㎜ 달하는 폭우가 내리면서 중부지역 곳곳에서 산사태가 이어지자 산림청은 10일 오전 11시를 기해 전국 40개 시·군·구에 산사태 예보를 발령했다.

강원 횡성군을 비롯해 서울 관악구, 세종시, 경기 부천·광명·군포·양평 등 7개 시·군·구엔 산사태 경보가 내려졌다. 또 서울 강서·구로·금천·동작·서초구, 인천 연수구, 경기 의정부·안산·구리·남양주·시흥, 강원 홍천·영월·정선, 충북 괴산군, 충남 아산시 등 33개 시·군·구엔 산사태 주의보 발령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는 다른 자연재해보다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011년 7월 27일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 인근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펜션 등 4채가 매몰되면서 대학생 등 12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산림청은 갑자기 경사면에서 많은 양의 물이 샘솟거나 땅의 울림이 있는 등 산사태가 발생할 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대피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평소 대피로와 안전지역을 확인해두면 좋다.

산림청 산사태예방지원본부 김영혁 과장은 “누적 강수로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 발생이 우려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안전 점검과 응급조치 등을 통해 주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대응을 철저히 하겠다”며 “산사태 예보가 발령된 지역의 주민들께서는 입산을 자제하고 안전사고 발생에 주의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 중앙안전대책본부(대책본부)는 3일째 계속된 집중호우로 서울·경기·강원에서1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또 경기지역에서 19명이 부상당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에서는 지난 8일 서초구 서초동 효성해링턴타워 인근 맨홀에 빠져 실종됐던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서초소방서는 “사고 당시 50대 여성도 실종됐지만 아직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수중로봇을 투입해 수색에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지하가 침수되면서 단전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주민 1937명이 대피한 것으로 포함해 1434세대 3426명이 일시대피했다고 밝혔다. 또 570세대 723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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