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로 재탄생한 '순이삼촌'..현기영 "기억하는 것이 비극 되풀이 않는 일"

선명수 기자 2022. 8. 1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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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비극 다룬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제주·경기 이어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현기영 동명 소설 원작.."4·3 영령 위한 진혼곡 되길"
제주 예술인들 주축 230여명 참여 대작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시가 공동 제작한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9월 3~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은 작은 슬픔이다. 그들에게는 4·3의 처절한 슬픔보다는 흰 눈 위의 얼어 죽은 새를 슬퍼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소설가 현기영씨의 이 같은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오랜 세월 ‘강요된 침묵’으로 이야기되지 못했던 제주 4·3의 비극을 세상에 알린 소설 <순이삼촌>(1978년)이 오페라 무대로 관객과 만난다. 이 오페라가 “4·3 영령들을 위한 진혼곡이 됐으면 한다”는 원작자 현기영의 바람이 담긴 공연이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시가 공동 기획하고 제작한 <순이삼촌>은 2020년 제주에서 초연한 창작 오페라다. 2020년 초연 후 지난해 제주에서 두 차례,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한 차례 공연을 열었고, 이번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총 4막으로 이뤄진 공연은 1948년 제주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토벌대의 집단 학살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그린다. 제주교향악단과 제주합창단을 비롯해 전원 4·3 희생자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4·3평화합창단, 극단 가람, 밀물현대무용단, 어린이클럽 노래하자춤추자 등 23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순이삼촌>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이 합창곡 ‘이름없는 이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선명수 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은 오래 전부터 4·3의 아픔을 다룬 오페라를 꼭 제작하고 싶었다는 제주 출신 소프라노 강혜명씨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의 예술감독과 연출, 각색을 맡은 그는 순이 삼촌 역으로도 무대에 오른다. 강혜명 예술총감독은 1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제주의 예술가로서 사명감을 느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순이삼촌>을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고 무작정 현기영 작가님을 찾아갔는데, 작가님께서 ‘신중하라’고 하셨고 몇번 더 찾아뵌 끝에 (작품 제작을) 허락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함께한 현기영 작가는 “국제적 무대에서 활약하는 성악가가 다른 좋은 무대도 많을 텐데 <순이삼촌>을 무대에 올릴 생각을 하니 갸륵했다”며 “4·3은 오랫 동안 금기의 영역이었고 너무 참혹하고 슬픈 것은 사람들이 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소재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예술가가 가진 최대의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40여년 전 이 소설을 썼을 때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잡혀가던 시절이었다”며 “그래서 소설로서의 <순이삼촌>은 다소 내성적이고 갇혀있는 면이 있었는데, 오페라로 그 외침이 방방곡곡 울리고 집단적인 몸짓이 되니 웅장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의 한 장면. 제주4·3평화재단 제공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 의미를 담은 공연 답게, 원작의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극중 인물들에 실제 희생자 이름을 붙였다.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인 공연인 점도 눈길을 끈다. 제주의 언어와 시각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과 삽화, 현대무용과 살풀이까지 공연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공연에서 ‘상수’ 역을 맡은 테너 김신규씨는 “<순이삼촌>이 처음 무대에 오를 때 단역을 제안받았는데 공연을 거치면서 주역까지 맡게 돼 영광”이라며 “저 역시 외할아버지가 4·3 사건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처음에 작은 역할에도 참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봉을 잡는 김홍식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가족이 4·3의 아픔을 겪은 단원들이 있다”면서 “윗 세대의 아픔을 연주로 표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공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 역으로 참여하는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씨는 “할머니가 부르는 아리아 중 ‘살아시난 다 살아진다’라는 노랫말이 있다”면서 “슬픔에만 얽매이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제주 여성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현기영 작가는 4·3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극단의 떼죽음은 없었다”면서 “그것이 한 공동체에서 일어났다면, 마땅히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고 지나가면 비극은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내달 3~4일 양일간 전석 무료 공연으로 열린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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