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가 사랑한 '국민화가' 이중섭을 만난다
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李작품, 기증품 중 104점 차지
회화·드로잉 컬렉션 중 최다
엽서화·은지화 등 90여 점 전시
'물놀이하는 아이들' 등 첫 공개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 80여 점과 기존 소장품 10점까지 총 9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이 12일부터 내년 4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지난해부터 서울관에 25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이건희컬렉션 열풍'의 두 번째 막이 오르는 셈이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흑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구상 시인이 1979년 '대향 이중섭'에서 묘사한 이중섭의 기구한 삶이다. 이건희컬렉션은 그의 초기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엽서화,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 작품 및 은지화, 정릉에서 그린 말기 회화 등을 고루 담고 있어, 그의 화업을 깊이 들여다보기에 탁월하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눠 소개한다. 1940년대는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을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는 작품은 1940년대 연필화 4점. 여인상 2점, 소년상 2점은 해방공간 원산에서 그려져 그의 초기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를 모델로 한 '여인'(1942년)은 폴 고갱의 타히티 시절을 연상케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가 남긴 엽서화의 4할에 해당하는 37점이 출품됐다. 우현정 학예연구사는 "연애 시절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숱한 엽서를 보냈는데 우편소인이 남아있어 사료의 가치가 높다. 1950년대 완성된 그의 화풍인, 원근법의 대담한 무시, 자유로운 공간구성, 원색 사용, 절제된 선묘 등의 특징을 앞서서 선취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가족과 헤어진 뒤 그렸던 은지화도 27점 출품된다. 철필로 담뱃갑 종이에 눌러 그리고 갈색, 검정 물감을 발라 헝겊으로 닦아내 상감기법처럼 표현했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그리기 위한 밑그림으로 그는 아내에게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195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은지화가 소장됐을 때 "내 작품이 비행기 탔겠네"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은지화 중 '가족을 그리는 화가'는 턱이 길어 아고리란 별명으로 불린 수염이 난 이중섭이 두 번 등장하는 특색 있는 작품이다.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와 '물놀이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 두 점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한 1980년대 전시된 이후 오랜만에 공개되는 '춤추는 가족'(1950년대 전반)과 '손과 새들'(1950년대 전반) 2점이 걸렸다. 중섭이 가족과 함께한 건 7년에 불과한데 가장 행복했던 이 시절 작품에는 아이들과 닭과 게와 물고기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마지막 전시가 된 미도파백화점 화랑의 '이중섭 작품전'(1955년) 직후 심신이 미약해진 그는 쓸쓸한 풍경을 그린 말년작 '정릉 풍경'을 남겼다. 키 큰 소나무와 돌담이 둘러진 기와집이 담겼다. 우 학예사는 "거친 연필 선과 크레용으로 색을 칠하는 등 여러 매체를 섞은 이 작품은 심신이 쇠약해진 생의 말년에도 기법적 실험을 이어나갔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중섭이 1년간 가족과 함께 정착했던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이 전시해설 오디오 가이드 제작에 재능 기부로 참여해 특별함을 더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건희컬렉션으로 증폭된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부응하고 한층 심화된 미술관의 연구를 발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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