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 #비개발자로 IT 기업의 '일잘러' 되는 법 [일잼포인트]

박지윤 2022. 8.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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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랜선사수 도그냥'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덕트 매니저 ②
편집자주
‘일잼 포인트’는 ‘일잼 원정대’에 소개된 인터뷰이들의 ‘일하는 자아’를 분석하고, 이들만의 ‘일잘 비법’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12년 차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자 이미준씨. 쇼핑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에서 프로덕트 오너(PO)로 일하고 있다. IT업계 취업을 꿈꾸는 문과생 취준생들의 '랜선 사수'로 불린다. 김하겸 인턴기자

▶ 12년차 서비스 기획자 '랜선사수 도그냥' 이미준 인터뷰 읽고 오기 (관련기사 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80913080004873

“IT 기획자는 코딩과 디자인을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요? 얼마나 잘해야 해요?”

12년 차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자 이미준(36)씨를 찾아온 문과생 취준생들을 하나같이 이렇게 묻습니다. 어쩐지 자신 없는 표정,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태도는 덤이죠. 미준씨는 말해요. ‘코딩 몰라도 된다, 디자인 툴? 하나도 배울 필요 없다. 잡스병만 퇴치하고 와라!’

많은 친구들이 IT업계에 대한 환상을 품고 와요. 스티브 잡스처럼 비범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혁신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로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환경은 절대로 화려하지 않아요. 화난 개발자와 예민한 디자이너 사이에서 양쪽 눈치를 보며 수정을 부탁하는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설움도 화도 꿀꺽꿀꺽 삼켜가며 온갖 읍소란 읍소는 다 하고 다녀야 하는 게 ‘기획자의 실상’이라면 실상. 6년 전, 미준씨가 브런치에 ‘보통의 UX 기획자’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래서래요. IT업계의 문과 출신 ‘기획자’는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널리 널리 알리기 위해서.

미준씨가 정의하는 ‘서비스 기획자’란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혁신가가 아니라 깊게 고민하고 넓게 조망할 줄 아는 ‘문제 해결 전문가’라고 해요. 주어진 도화지의 크기를 정확히 실현 가능한 크기의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이죠. ‘기획자의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 등 다양한 직군과 협업해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IT업계에서 문과생 출신이 ‘전문가’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자질엔 어떤 것이 있는지, MZ세대 IT꿈나무들의 ‘랜선사수’ 미준씨에게 물었습니다.


Point 1. 일잘러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건 ‘메타인지’ 네 업의 본질을 파악하라!

미준씨는 일잘러 기획자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메타인지’라고 말합니다. 메타인지란 쉽게 말하면 ‘자기 객관화’라는 뜻인데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이 맡은 업무의 목적과 절차,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죠.

저연차 시절 미준씨를 괴롭혔던 고민 중 하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대요. 여러 직무의 구성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협업을 도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메타인지 능력’을 갖추게 됐죠.

기획자에게 필요한 메타인지의 핵심은 '주제 파악'이다. 김하겸 인턴기자

“많은 IT업계 지망생들이 서비스 기획자의 핵심 자질은 ‘창조력’이라고 오해해요. 실무에선 전혀 그렇지 않죠. 기획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상황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이에요. 기획자의 일은 '상상을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러니 가능한 한 꼼꼼하게 모든 제약 조건을 다 찾아낸 다음, 그 범위 안에서 실현 가능한 과제를 제시해야 하죠. 우리 팀이 가진 역량은 어디까지인지, 우리 회사가 원하는 성과와 우리 팀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얼마나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검토하며 일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인지가 중요해요. 이 본질을 모르고 기획자로 입사한다면, 반드시 헤맬 수밖에 없어요."


Point 2. 코딩 몰라도 됩니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스킬’

서비스 기획자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통역’입니다. 컬러와 폰트의 세계에 사는 디자이너의 언어와 코드의 세상에 사는 디자이너의 언어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부지런히 해독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입니다. 서비스 기획자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11년 전, 인턴으로 입사해 바로 실무 현장에 내던져진 미준씨는 ‘마치 낯선 나라에 떨어진 사람’처럼 몸빵으로 그들의 언어를 익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기획자 본인이 디자인 능력이 뛰어나고 개발 지식이 많으면 좋은 산출물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방향과 개발자·디자이너가 이해한 목표가 일치하는지만 알 수 있으면 '오케이'예요. 이렇게 고쳐야 한다, 저게 더 낫다 지시하는 건 월권이거든요. 기획자의 영역을 벗어나 ‘이래라 저래라’하기 시작하면 서로 감정이 상하기 때문에 될 일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죠. 그래서 저는 열심히 존중하는 법부터 배웠어요. 그들의 고유 영역을요.

각자의 영역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은 협업을 위한 소통의 '기본'이다. 김하겸 인턴기자

디자이너와 소통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취향을 근거로 비평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디자인은 ‘직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나 소나 ‘별론데?’라는 말을 던지기 쉬운 부분이죠. 디자인을 바라는 시각이 ‘미감’으로 넘어가 버리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진다고 해요. ‘이 색은 별로니까 저 색으로 해주세요. 저 폰트는 이상하니까 그 폰트로 바꿔주세요’라는 피드백은 디자이너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월권이 되요. 디자이너들은 컬러 배합과 폰트 크기를 보는 데 전문가인데, 비전문가가 그것에 대해 지적하는 건 선을 넘는 행위인 거죠. “저는 일단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문제는 무조건 디자이너 말을 따라요.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확실하게 믿어주는 거죠.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봤을 때, 고객의 이용 동선상 문제가 있는 부분만 잡아내 수정을 요구하죠.

한편, 개발자와 소통할 때 중요한 건 ‘그들이 쓰는 전문용어에 지레 겁을 집어 먹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개발자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코딩을 배우려 드는 건, 생활 영어에 필요한 어휘만 익히면 되는데 고급 문법을 마스터하겠답시고 덤비는 꼴과 비슷해요. 토익 900점 받은 사람보다 반년이라도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 영어를 더 잘하듯, 기획에 필요한 개발지식을 배우기 적합한 곳은 ‘현장’이라는 겁니다. “가장 빠른 건 코딩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내 옆의 개발자에게 묻는 거예요. 외국어도 7번 이상 들으면 머릿속에 어떤 뜻인지 각인된다는 이론이 있잖아요. 내가 파이썬 안다고 개발자랑 코딩으로 토론할 게 아니거든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인지’예요. 개발자가 말하는 것이 기획자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지만 제대로 알면 되는 거죠.”


Point 3. 당연한 것도 의심하라! 기획 안목을 키우는 ‘역기획 스터디’

“IT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려면, 경험과 안목이 중요하다는데… 실무자가 되기 전엔 배울 수 없는 건가요?” 수강생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인데요. 이에 대한 미준씨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혼자서 서비스 기획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거든요. 바로 ‘역기획(Reverse Planning)’이라는 방법론이죠. 역기획이란 게임업계에서 통용되던 말인데요. 완성된 게임을 면밀히 분석해서 게임의 설정이 만들어진 배경과 조건을 거꾸로 유추하는 공부 방법이라고 해요. 미준씨는 게임 업계에서만 통용되던 ‘역기획’의 개념을 본인의 분야에도 적용시켰죠. 그가 쓴 첫 책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스쿨’에 이 방법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IT업계 전반에서 범용적으로 쓰이게 됐고요.

미준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역기획'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도그냥TV' 캡처

‘도그냥표 역기획’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표면 뒤에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해요. UI(User Interface, 사용자 환경)를 그저 좋은 UI, 나쁜 UI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그 뒷면에 숨은 의도를 파헤치는 거죠. 사용자 입장에서 불만이 많은 기능이라 해도, 사업자 입장에선 ‘의도된 불편함’일 수 있거든요.

“일례로 ‘유튜브’라는 서비스를 역기획해볼게요. 유튜브엔 반복 재생 기능이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어요. 한 영상의 재생이 끝나면 유튜브가 자체적으로 추천하는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 버리죠. 사용자 입장에서만 보면 ‘왜 이렇게 필수적인 기능이 없지?’ 하고 불편하게 여길 수 있어요. 근데 유튜브는 그 기능을 일부러 안 만든 거예요. 유튜브의 서비스 전략은 ‘개인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 영상을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수익 구조는 맞춤 영상에 기반한 개인화 광고죠. 그러니 유튜브의 목적은 다양한 영상을 최대한 많이 보여줘 사용자의 취향 정보를 확보하는 거예요. 이미 보여준 영상을 또 틀어줄 의미가, 이유가 없는 거죠.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기획 의도를 찾을 수 없어요. 사용자의 편의 관점에서만 보면 서비스의 본질인 ‘비즈니스’를 볼 수 없는 거죠.

일부러 불편함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기능을 만드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죠. 이유는 다양합니다. 물론 때로는 이런 해석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에도 의미는 있어요. 완성품으로 세상에 등장한 서비스 이면에 숨은 기획자의 손길과 전략을 추측하다 보면, ‘실무자처럼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근육’이 길러지거든요. “때로는 무엇을 넣을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 정하는 게 더 어렵기도 해요. 역기획을 하다 보면 이런 시각을 기를 수 있죠.”

▶ 12년차 서비스 기획자 '랜선사수 도그냥' 이미준 인터뷰 읽고 오기 (관련기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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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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