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경, 우영우의 백마탄 왕자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입력 2022. 8. 10. 13: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사진제공=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하윤경이 연기하는 최수연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의 천재성과 미숙함에 투덜거리면서도, 기꺼이 회전문을 잡아주며 편의를 돕는다.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가 이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의협심 가득한 말들은, 따뜻한 사람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급기야 수연은 "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라며 로펌 내 낙하산 폭로로 곤란해 하던 영우와 회사 직원들 앞에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변호인이 되길 자처한다.

최수연은 극중 별명인 '봄날의 햇살'에 딱 어울리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지녔다. 영우가 어려움에 처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도움을 주고, 변호하는 이의 죄목이나 배경 대신 사연을 보며 마음을 헤아린다. 영우는 그런 수연을 두고 '성품이 착한 여자'라는 뜻의 선녀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불의를 응징할 때 목소리를 가장 크게 높이고, 약자를 보호하되 얕보지 않는다. 타인을 향한 존중,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태도는 속뜻이나 거창한 이유가 없어 더 사랑스럽다. 이러한 수연의 방향성은 강한 매력을 가졌으나 다소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집안, 외모, 직업까지 완벽한 '인간미 상실'마저 상쇄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연은 계산하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감으로써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지만, 관계의 암(暗)이 드러날 땐 화르륵 폭발시키며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투명한 수연은 쉽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슈퍼우먼이 되는 수연의 존재는 만만치 않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수연의 조건이 서브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탄탄한 학벌과 직업, 집안을 가졌으며, 아쉬울 게 없어 늘 자신감 있게 주변인을 대하고 직업적으로도 인정받는다. 로펌 공홈 게시판에 영우의 취업 비리를 폭로한 권민우(주종혁)에게 "도둑맞은 기분은 좀 나아지셨어요?"라며 면박을 주고, 피고인이 영우에게 누나라고 부르자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제지하는 등 '백마탄 왕자'처럼 영우를 위해 대신 쓴소리를 뱉어주는 것도, 남들은 신경도 못 쓴 영우의 음료 뚜껑을 따준 것도 바로 수연이다. 이에 더해 자신이 짝사랑하던 이준호(강태오)를 영우에게 양보하며 "고래 얘기 평생 들어줄 것처럼 굴다가 1년도 못 참고 닥치라고. 그렇게 영우한테 상처나 줄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죠. 영우한테 가서 말해요. 얼마 못 갈 것 같은 마음 아니라고"라며 준호를 행동하게 이끈다. 수연은 로맨스, 성 역할, 삼각관계를 둘러싼 거의 모든 클리셰를 비틀어 버린다. 

사진제공=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하윤경은 이런 수연을 실재와 판타지 사이에 존재하게 한다. 수연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연기도 하고 있지 않은 수연'을 표현해냄과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갖고 싶은 친구'의 판타지를 함께 구현한다. 평상시에는 눈빛, 말투 등의 미세한 조절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구사하고,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입력값을 바꿔 극적인 연기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때문에 표정이나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우영우와 상호작용을 하며 밸런스를 이룬다. 차별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영우에게 답답함을 느낄 때쯤, 수연이 이를 대신 응징하는 것으로 사이다를 들이키게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만의 오묘한 '워맨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결정적인 때에 진중하게 힘을 싣는 하윤경의 연기는, 수연의 의협심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믿게 만든다.

하윤경은 2015년 연극으로 연기를 처음 시작했고, 이후 독립영화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며 차곡차곡 그리고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렸다. 그러다 2020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선빈 역으로 드라마에 진출하면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독립영화로 꽃방울을 맺고, 하선빈에서 최수연을 거쳐오면서 연기 인생의 꽃방울을 터트렸다. 그가 안방극장에 등장함과 동시에 대중의 눈에 들었던 것은, 바탕을 견고하게 다져온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얻은 최수연이라는 인물은, 이제 모두의 백마탄 왕자가 됐다.

<아이즈 ize>와 사전협의 없는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