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25) 명지대 이준혁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조형호 입력 2022. 8. 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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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스물다섯 번째 미생은 명지대 이준혁(F, 186cm)이다. 배포 있는 슈터를 꿈꾸는 이준혁의 농구 이야기를 알아보자.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준혁의 잠재력, 그리운 순간을 떠올리다
이준혁은 어릴 적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라켓볼이나 농구,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 농구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마음에 인헌초 코치를 찾아갔다. 마침 인헌초 농구부에서도 키 큰 학생들을 찾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제가 먼저 가서 테스트 봐도 되냐 여쭤봤고, 운 좋게 붙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어릴 적부터 농구를 스포츠 클럽에서 배운 경험이 있어 기본기가 어느 정도 되어있었거든요. 다행히도 팀에 합류해 바로 시합을 뛸 수 있었죠.”

이준혁은 이후 인헌초의 연계 중학교인 광신중으로 진학했지만 1년 뒤 개인 사정이 겹쳐 단대부중 전학을 선택했다. 전학으로 인한 징계로 대회도 하나밖에 뛰지 못했다. 그 대회에서 팀은 예선 탈락을 했으나 이준혁은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때의 감정이 그립죠. 중학교 때 여러 고등학교와 연습 경기를 했거든요. 나름대로 잘해서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슈터뿐만 아니라 센터 빼고 모든 포지션을 봤었어요. 제 공격보다는 팀을 살려주는 플레이를 좋아했는데 슛에 장점이 있다 보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한방씩 터트려 주는 게 아무래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의 긴 침체기, 그의 무기였던 자신감을 앗아가다
이준혁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에 여러 고등학교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수도권의 명문고를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준혁은 고민 끝에 휘문고로 합류했다.

“제 나름대로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처음에 휘문고로 갔는데 저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학교를 알아보던 중 용산고에서도 러브콜이 와서 전학을 선택했어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죠.”

중학교 때까지 부상으로 고생한 적 없었던 이준혁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 잦은 잔부상에 시달렸다. 전국 최고 수준 선수들이 모인 용산고답게 주전 경쟁도 치열했다. 부상과 경쟁 구도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낀 이준혁은 기량 발전에 정체기를 맞이했다.

“주변에 워낙 잘하는 사람도 많고, 컨디션도 안 돌아와서 한동안 정체됐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시합을 좀 뛰고 대회에 출전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죠. 아마 3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서면서 조금씩 폼이 올라온 것 같아요. 뒤늦게 조금씩 좋아지긴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보여준 게 없다고 생각해요.”

#기쁨 자체의 조성원 감독 러브콜,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대학 3, 4학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와는 정반대로 제가 보여준 게 없다 보니 러브콜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 조성원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명지대로 가게 됐죠. 그냥 너무 행복했어요.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계속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죠.”

그러나 이준혁의 행복 농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명지대 감독이었던 조성원 감독이 창원 LG로 팀을 옮기면서 현 명지대 감독인 김태진 감독이 합류했다. 이전과 달라진 팀 스타일에 이준혁은 어려움을 겪었고, 또 한 번의 침체기를 겪었다.

“조성원 감독님께서 제가 저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안 보고 공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어요. 항상 슈터는 어떤 상황에서든 슛을 던질 줄 알아야 하고, 제가 쏘고 싶을 때 슛을 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감독님이 떠나시니 자연스레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대학교 마지막 대회까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인생을 돌아봐도 대학교 3, 4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죠. 스스로 농구가 안 되는 부분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새 감독님의 스타일에 따라가지 못해서 속상하기도 했어요. 많이 아쉬워요.”

#“프로에 가는 것이 1차 목표, 어린 선수들에 도움 주는 지도자 또한 나의 꿈이다”
“드래프트가 솔직히 조급하진 않아요. 프로에 가게 되면 물론 좋겠지만 학생 신분으로서 즐겁게 농구를 하는 것이 1차 목표였기 때문에 큰 후회는 없어요. 4학년 리그 5, 6경기 정도 치르면 제가 어떻게 될지 감이 오잖아요. 기대를 어느 정도 내려놓은 것도 맞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

이준혁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농구 인생의 가장 감사한 분들을 떠올렸다. 광신중학교 당시 하상윤 코치와 단대부중의 최성우 코치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하상윤 선생님의 관심이나 애정을 몰라봤던 것 같아요. 그때 감독님의 밑에서 더 오래 배웠다면 어땠을지 후회도 되고 감사하고 죄송하죠. 최성우 선생님은 제가 잘할 수 있게끔 믿음을 주신 분이기도 하고 선수들을 위해서 항상 노력을 해주신 분이거든요.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제가 원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 하고자 하는 걸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에요. 프로에 가게 된다면 어떤 팀이든 녹아드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혹여 농구를 그만두더라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제가 뱉은 말은 책임지고 끝까지 완수할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제 스스로와 하는 약속이죠(웃음).”

마지막으로 이준혁은 “우선 프로가 안 된다면 군대도 해결해야 하고, 스포츠 자격증을 취득해서 어린 친구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유소년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경력을 쌓고 농구 코치가 되는 것이 또 다른 목표죠.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1차 목표지만 아마농구를 보면 분명히 잘하는 선수임에도 아직 기를 못 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힘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배웠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그 선수들에게 공감해 주고 발전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준혁은 시즌 종료 후 개인 운동과 픽업 게임 등을 통해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농구를 통해 희로애락을 겪으며 한층 성장한 이준혁이 프로 유니폼을 입고 마침내 웃어 보일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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