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보다 고우신 장모님.. 사위인 저에게 많은 사랑 주셨죠

기자 2022. 8. 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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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안은경 (1919∼2018)

‘사위는 백년손님이다’라는 말이 있다. 장인, 장모에게 사위는 손님처럼 늘 서먹한 관계라는 말일 게다. 하지만, 나는 장인, 장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40년 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주재할 때,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손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랑하는 사위에게, 산천초목은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하다네. 사위가 보내준 서신 받았지만 회답도 않고 세월이 가서 미안하네.” 세 살배기 외손녀 지원이가 사위 사진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리 아빠라고 자랑한다는 이야기며,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잘 춘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히 적어 보내주셨다. 달필로 쓰신 서신의 말미는 이렇게 맺었다. “답장은 바쁜데 쓰지 말고, 늙어서 받침도 모르고 되는 대로 써서 난필이네. 자, 그러면 몸 건강하여 기쁨으로 만나세.”

양면 편지지에 3페이지가 넘게 빼곡히 써 보낸 편지다. 한문 투로 쓴 편지 내용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사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 있다. 나는 숙소 앞 야자수 나무에 기대어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처음으로 인사드렸던 일을 떠올린다.

장모님은 아내와 맞선 보던 날,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몰래 오셔서 멀리 뒷자리에서 나를 면밀하게 관찰하셨단다. 중매 선 지인은 자리를 뜨고 지금의 아내가 장모님께 처음으로 인사시켜 주었다. 육순이 넘으셨지만 고운 인상에 연비취색 여름 한복을 입고 계셨다. 호텔 앞 현관까지 두 사람을 다정하게 배웅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처가는 대대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유명한 목사님도 배출하고 권사, 장로가 대부분이었다. 개신교 집안에 결혼하려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거의 개신교로 개종하던 게 당시의 풍조였다. 하지만 천주교 집안과 혼담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해 장모님은 서운한 감정보다 딸을 이해해 주시고 사위로 받아들여 주셨다.

큰 처남 내외가 자녀를 만나러 미국에 갈 때면 처형과 아내는 장모님을 서로 모시려고 경쟁했다. 그럴 때면 작은사위가 더 편한지 한 달여 동안 우리 집에 계셨다. 퇴근 후 저녁 무렵에는 휠체어에 모시고 아파트 앞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늘 괜찮다고 사양하면서도 사위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기대어 행복한 표정이셨다. 산책 나온 할머니들이 “행복해 보이네요. 아드님이세요?” 하고 물으면, “사위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면, “놀랍네요. 참으로 효자 사위네요” 하며 모두가 부러워했다.

벚꽃이 봄바람에 한가롭게 흩날리던 4월. 예전처럼 퇴근 후 휠체어에 모시고 공원 산책을 나섰다. 보름 달빛 속에 분홍빛 작은 목련꽃 한 송이가 장모님 휠체어 무릎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꽃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참 곱다” 하시며 고개를 들어 목련 나무에 시선을 두었다. 장모님 모습이 분홍빛 목련꽃보다 더 곱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장모님은 천수를 다하고 100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으셨지만 소천하기 전날 밤까지도 성경을 읽으시다 잠든 모습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곁을 떠나셨다. 오랜 세월 장모님을 모신 분당 큰 처남댁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하셨다. 손쉬운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긴 세월 효도를 다한 처남 형님 내외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40년 전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손편지를 회상하며 독일에 주재하고 있는 사위에게 나도 오늘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련다. 외할머니 앞에서 재롱부리던 세 살배기 첫딸 지원이가 어느새 세 살배기 개구쟁이 아들 엄마가 됐다. 매일 영상 통화를 하지만 오늘은 더 큰 사랑으로 사위에게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오늘도 달이 훤하다. 휠체어를 밀던 공원길을 아내와 함께 걷고 싶다. 나는 과연 진정한 백년손님이었을까? 생전의 친정엄마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는 아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보련다.

작은사위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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