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를 가다] 100톤짜리 보어헤드고래..죽어서도 알래스카를 지키다

글·사진 김완수 극지방 여행전문가 2022. 8. 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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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배로우
북아메리카 최북단 도시 알래스카의 배로우를 알리는 입간판. 양 옆에 보어헤드 고래뼈로 만든 장식물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끝 포인트 배로우Point Barrow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세상의 꼭대기Top of the World'인 첫 번째 목적지를 향했다. 그러나 해안에 다가가니 접근금지 팻말이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려 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도로 공사 중이어서 일반 택시로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툰드라 투어버스를 탔다. 묵고 있던 호텔에서는 포인트 배로우까지 간다고 했지만 투어버스 운전사는 시내 다운타운과 외곽을 돌고서는 그곳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4륜구동 지프를 모는 카우보이 닮은 가이드 겸 운전수를 소개받아 출발할 수 있었다. 바퀴가 상당히 커서 목적지까지 무난히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세상의 꼭대기'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메리카 남쪽 끄트머리 칠레의 '케이프혼',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공의 '희망봉', 북유럽 꼭대기 노르웨이의 '노르카프' 등은 열심히 홍보한 덕에 세계적인 명소가 됐는데 말이다.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지나서 질퍽한 도로를 통과한다.

배로우를 지나 어느 인적없는 마을에서 본 야자나무 형상. 고래수염으로 야자수처럼 꾸몄다.
고래와 순록의 뼈무덤.

세 번째, 포인트 배로우 도전

과연 북아메리카의 꼭대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계속 전진하는데 커다란 물체가 나타났다. 집채만 한 고래. 죽어서 이곳까지 떠 밀려와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고래 뼈. 난생 처음 바라보는 커다란 뼈와 살코기, 방금 불에 탄 듯 검게 드러난 고래의 뱃속. 길이 20여 m, 무게 100여 톤은 됨직한 보어헤드고래Borehead Whale였다.

가이드는 방금 북극곰이 다녀갔다고 한다. 주변에는 북극곰의 털과 발자국이 있었다. 워낙 큰 고래인지라, 북극곰도 배를 채우고 유유히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수많은 바닷새들도 가끔씩 들러서 모처럼의 만찬을 즐긴다. 고래뼈 터널이 엄청난 크기를 과시하고 있다. 누군가는 죽어서 남의 먹이가 되어주는 야생의 세계. 그 옆에는 고래의 죽음에 동행자인 듯한 순록의 뼈 무덤이 남아 있었다. 지상 최대의 동물 고래는 북극곰과 함께 포인트 배로우를 지키며 인간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감동을 느끼며 해변의 포인트 배로우로 도착했다.

해변에 죽어 있는 바다코끼리와 바다새.

바다코끼리의 상아를 노리는 사냥꾼들

알래스카의 가장 끝, 아니 북아메리카의 가장 끝 포인트 배로우를 지나 질퍽한 도로를 통과할 때 쯤 폐허가 된 마을이 나타났다.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그네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에스키모들도 그네를 만들어 아이들을 뛰놀게 했나보다. 그런데 그네 모습이 특이했다. 나무로 만든 그네 기둥 위에 카리브 뿔을 걸어 치장했다. 그네 의자는 음료수용 플라스틱 박스로 만들었다. 물자가 부족한 에스키모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든 것 같다.

유령마을 같은 동네에 생뚱맞게 야자수 나무가 보였다. 다가가보니 나무 기둥에 고래수염을 붙여 야자수 나무처럼 만들어 놓았다. 추운 북극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의 야자수가 그리웠을까. 해는 저물고 바닷가에 석양이 진다.

지프는 쉬지 않고 북극 해변을 달린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가이드 운전수는 뭔가를 발견한 듯 해안가로 다가간다. 커다란 바다코끼리Walrus가 죽어 있었다. 죽어서 이곳 해변까지 떠밀려 온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머리가 없다. 북극곰 등 다른 동물이 잡어 먹었다면 분명히 머리뼈와 상아 등은 남아 있을 텐데 머리만 없어진 것이다. 바다사자 머리와 상아는 비싼 값에 팔린다. 사냥꾼들이 바다사자의 머리만 싹둑 잘라간 것이다.

나무로 만든 그네 기둥 위에 카리브 뿔을 걸어 놓았다.
배로우의 'Top of the world' 호텔
북극해 해변에서 만난 젊은 에스키모들.

"한국 김치 넘버원!"

배로우에는 5,000여 명의 에스키모가 수천년 동안 북극해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한국인도 몇십 명 거주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연 한국식당도 몇 군데 있다. 에스키모가 주고객이다. 에스키모인들은 북극해 유전의 석유를 시추하는 메이저 회사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그 보조금으로 외상값을 갚고 가족끼리 외식도 한다.

이곳은 추운 지역이라 공식적으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술을 마신 후 거리에서 의식을 잃으면 동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에는 집에서 한국식당에 음식을 주문한다. 이때 한국인 특유의 '배달의 민족' 특기가 발휘된다. 에스키모인들도 한국식당의 김치 맛에 익숙해지고 있다.

에스키모들은 목탁Motak이라는 고래 껍질 부위를 즐겨먹는데 대개 삶아 먹는다. 훌륭한 비타민 보충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목탁 맛은 돼지고기 하얀 비계보다 딱딱하지만 구수하다. 그 목탁을 김치에 싸먹는 것이다. 채소가 부족한 에스키모인의 식단을 김치가 보충해 주는 것이다. 해변에서 어울리고 있던 젊은 남녀들이 우리가 한국인이라니까 친근감을 보이며 "김치 넘버원!" 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운다.

목탁Motak 이라 불리는 고래 껍질 부분. 주로 삶아서 먹는데 돼지고기 비계보다 약간 딱딱하면서 구수한 맛이 난다. 현지인들은 한국식당에서 이것을 김치에 싸서 먹는다.
에스키모 젊은이들과 건배하는 필자(가운데)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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