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진실'[시네프리뷰]

2022. 8. 1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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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출연한 이들은 아마도 뱅크시의 본명이나 원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게 그것이었을까.


제목 뱅크시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영국
상영시간 112분
장르 스트리트 아트 다큐
감독 엘리오 에스파나
출연 뱅크시, 벤 아인, 스티브 라자리데스, 존 네이션, 펠릭스 ‘FLX’ 브론, 알란 KET, 스케이프 마르티네즈, RISK 등
개봉 2022년 8월 11일
등급 전체 관람가
수입/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마노엔터테인먼트


“그의 비밀이 밝혀진다.” 영화의 홍보글에 등장하는 문구다. 그럴 리가 있나. 정말 그랬다면 벌써 난리 났겠지. 그? 뱅크시다. 익명으로 벌써 20년 넘게 활동해온 거리 예술가. 동시대 가장 뜨거운 논란을 몰고 다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뜨겁다고? 정말이다. 지난 8월 2일 열린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 측 관계자는 마이크를 잡고 “분명 누군가의 취향은 아닐 수 있다”라며 “만약 재미없다면… 그냥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불쑥 솟는 의문. 지금까지 한국에서 뱅크시 작품활동에 공개적으로 딴지를 건 사람이 있었나. 보수매체 같은 곳에서도 종종 호의적으로 소개되곤 하지 않나. 적어도 필자는 뱅크시의 작품활동에 대해 ‘반(反)자본주의’를 설파하니 불온하다던가, 그라피티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하니 처벌해야 한다고 딱지를 붙이는 경우를 못 봤다. 하긴 보수정권 법무부 장관의 고등학생 딸이 지난해 강남에서 열어 논란이 됐던 전시회 포스터도 “인종차별을 멈추기 위해 연대해 일어서라”라고 선동하고 있는 마당 아닌가(물론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폰트로 미국 유학 전문 미술학원이 협력사로 명시돼 있는 건 ‘안습’이지만).

누가 뱅크시를 불온시할까

국내엔 〈뱅크시〉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다. 대충 번역해보면 ‘뱅크시와 무법예술의 발흥’ 정도의 뜻이리라.

영화는 최대한 사실을 담으려 노력한다. 그 수단은 뱅크시가 과거 몇차례 한 언론인터뷰다. ‘얼굴 없는 예술가’답게 뱅크시가 직접 출연하지는 않는다. 내레이터를 써서 인터뷰 내용을 대독한다. 여기에 뱅크시가 직접 제작한 영화도 기꺼이 동원한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다. 어디 미술전 같은 델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떠올릴 것이다. 다리 아픈 미술관 관람의 긴 여정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도록 같은 걸 파는 기념품 부스다. 상업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는 현대 미술계의 사정에 대한 풍자다. 뱅크시는 결국 달랐냐고? 그건 뒤에 이야기하자. 영화가 담은 뱅크시의 ‘진실’(비밀이라기보다 진실이라고 해두자)은 더 있다. 실제 뱅크시와 같이 작업한 유명 그라피티 작가들, 그리고 뱅크시가 박물관에 침입해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거나, 영화 시작 장면에 인용된 유명한 소더비 경매 반달리즘 사건(뱅크시 자신의 작품이 경매에 낙찰되는 순간, 원격조종 스위치를 눌러 미리 그림 뒤에 장착했던 파쇄기가 작동해 그림을 찢은 사건. 2018년의 일이다)과 같은 영상을 찍은 뱅크시의 ‘작업동료’를 인터뷰한다. 영화에 출연한 그들은 아마도 뱅크시의 본명이나 원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를 찍는 감독도 결국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게 그것이었을까.

다른 뱅크시 다큐와 다른 점은

뱅크시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모든 걸 돈으로 환원하는 자본주의 상업문화에 적대적인 뱅크시의 정신을 충실히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공공연하게-이를테면 유튜브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쉽게 접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위의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유튜브에 전체 영상이 등록돼 있다. 그럼에도 또 한편의 뱅크시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이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란 무엇일까. 당장 이 영화와 비슷한 시점에 만들어진 〈공개수배 뱅크시(Banksy most wanted)〉(2021) 역시 뱅크시의 작품세계와 일대기를 담고 있는데(이 작품은 국내에선 EBS 다큐영화제를 통해 공개됐고, 역시 유튜브에 들어가면 무자막이지만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

영화가 추구하는 주제는 베일에 싸인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가면’을 벗겨 본명은 뭐고 나이·가족관계는 어떻다 등을 밝히려는 게 아니다. 뱅크시라는 아티스트가 나올 수밖에 없던 사회적 상황, 힙합과 고딕·펑크음악, 브레이크댄스 등 길거리에서 탄생한 하위문화를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의 증언과 본인의 고백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2시간에 가까운 긴 상영시간인데도 상당히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상영관에 얼마나 걸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극장관람을 추천한다.

절반만 파쇄된 ‘풍선을 든 소녀’의 그후 운명은


로이터 연합·경향 자료


앞서 인용한 2018년 소더비 반달사건 때 뱅크시 작품 ‘풍선을 든 소녀’의 최종 낙찰가격은 104만2000파운드였다. 한국 돈으로 약 16억6600만원. 유튜브 같은 데를 보면 사건 당시 촬영한 영상이 있는데, 작품은 완전히 파쇄되지 않고 중간 정도 파쇄된 채 벽에서 내려졌다. 뱅크시에겐 돈으로 사고팔며 얼마나 높은 가격을 받았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예술시장의 아이러니를 조롱·비판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뱅크시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다 파쇄 중이던 이 작품의 사진을 올리며 “Going, Going, gone…”이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고 있으며, 마침내 이뤄졌다(gone)는 뜻이리라. 이튿날 그는 다시 ‘파괴는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풍선을 든 소녀’의 운명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원작 작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소더비 측은 경매에 넘겨진 작품이 작가에 의해 파쇄된 걸 두고 “뱅크시 당했다(Bansky-ed)”고 코멘트했다. 작품이 반쯤만 파쇄된 것을 두고 ‘센세이션을 일으키려 일부러 의도한 것 아니냐’ 또는 ‘처음부터 경매회사와 작가가 짜고 쇼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듯 뱅크시는 유튜브 ‘뱅크시필름’ 채널에 그림의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장면부터 실제 경매장에서 파쇄되는 장면까지를 모두 찍은 영상을 남겼다. 처음부터 다 의도한 설정이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리허설에서는 모두 성공했다’며 아쉬움을 담은 코멘트도 남겼다. 완전히 파쇄해 그림이 사라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반쯤 파쇄된 채 남은 작품은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Love is in the Bin)’로 재명명돼 세계 전시투어를 다녔다. 그리고 지난해, 그러니까 2021년 10월 14일 이 작품은 다시 소더비 경매에 나왔고(사진), 영화 자막에도 언급됐지만, 애초 낙찰가보다 18배 오른 1870만파운드에 낙찰됐다. 아마 뱅크시도 머리를 싸맸을, 상업자본주의의 역습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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