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파친코』 이민진 "놀라운 역사 견디며 분투해온 한국인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충분"[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2. 8. 1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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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역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민진 리(Min Jin Lee)는 정규 수업을 빼먹는 대신 친구와 함께 맛있는 쿠키와 달콤한 차가 나오는 특강에 참석했다. 특강에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선교사가 강사로 나왔다. 선교사는 일본에 살던 한국인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본에서 태어난 자이니치(在日) 소년 이야기도....

미국인 선교사에 따르면, 교구 신자였던 열세 살 자이니치 소년은 어느 날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왜 아들은 죽어야 했을까. 너무나 슬펐던 소년의 부모는 소년의 물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런데 아들 앨범에 일본인 친구들이 아들에게 욕하고 저주하는 글이 담겨 있었다. “김치 냄새가 난다” “우린 네가 너무 싫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죽어! 죽어! 죽어!”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슬펐고, 화도 났다. “저도 아들이 있는 엄마인데, 열세 살 자식을 잃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13세 자이니치 소년의 죽음은 그의 뇌리에 오래, 깊게 박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떨쳐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1987년, 그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95년, 갓 결혼해 남편과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느라 대출까지 받은 스물여섯의 그는 전업 소설가가 되기 위해 고수익이 보장되던 기업전문 변호사를 그만뒀다. 자이니치 소년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왠지 소설을 곧 출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렇게 되면 날아간 수입도 금세 채워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가슴 속에 품었던 이야기가 장편소설 『파친코』로 나오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자이니치 3세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초고 『모국(motherland)』을 썼다. 하지만 그는 초고의 한 챕터만 남기고 모두 버려야 했다. 소년 솔로몬으론 큰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었고, 재미 역시 없었다. 남편조차 재미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첫 번째 버전은 솔로몬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착한 소년이지만, 재미가 크지 않고, 삶 역시 너무 무난했어요. 솔로몬은 큰 서사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었죠. 더구나 첫 버전에선 지금의 여주인공 선자도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쓰게 된 겁니다.”

2007년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뒤 4년간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곧 초고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왕이나 통치자의 역사가 아닌, “역사가 함부로 제쳐놓은 사람들”, 그러니까 역사의 격랑에 맞선 개인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은 솔로몬에서 자이니치 1세대 선자로, 제목 역시 『모국』에서 『파친코』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까지 이어진 굴곡진 현대사를 배경으로 선자네 가족 4대의 애환을 핍진하게 그린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가 태어났다. 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 양진, 일본으로 건너간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가 낳은 손자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소설 제목의 파친코는 일본의 대표적 사행사업으로, 자이니치가 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부산 영도에서 어머니 양진과 함께 허름한 하숙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선자는 생선장수 한수에게 속아서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선자는 목사 이삭의 청혼을 받고 결혼한 뒤 새 인생을 위해 이삭과 함께 오사카로 향한다. 선자는 일본에서 한수의 핏줄 노아와 이삭의 핏줄 모자수를 낳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자이니치에 대한 괄시와 차별에 맞서 노아는 공부에 파고들고, 모자수는 파친코 사업에 나선다.

냄새가 난다는 모욕 속에서도 김치를 팔아 억척스럽게 생계를 유지하는 선자를 비롯해 소설 속 인물들은 뒤틀린 현대사와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선한 의지와 자존감을 지키며 강인하게 살아간다. 마치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는 첫 문장처럼.

“훈이는 새 소식을 가져오는 남자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단호히 숨을 내쉬고는 벌떡 일어나서 일을 했다. ‘상관없다.’ 훈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상관없어.’ 중국이 항복하든 대갚음하든,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고 식구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려면 짚신을 삼아야 했고 몇 마리 안되는 닭을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을 쫓아야 했다.”(30쪽)

소설 『파친코』는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와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특히 최근 애플TV+가 제작비 1000억 원을 투입해 배우 윤여정과 김민하, 이민호 등이 출연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다. 『파친코』는 문학사상사에 의해 국내에 번역 출간됐지만, 지난 4월 계약 문제가 불거진 뒤 인플루엔셜로 바꿔 최근 새 번역으로 재출간됐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은 왜 『파친코』를 써야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정은 앞으로 어디로 향해 갈까. 올해 만해문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한 이 작가를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들과 함께 만났다.

―왜 출판사를 바꿔서 재출간하게 됐는지.

“저는 54세이고,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다. 『파친코』는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이고,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을 선택한 이유는 번역을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을 더 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번역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오디오북, 이북 출간도 중요한 이유다. 미국작가협회에서도 일하며 작가의 권리 옹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작가로 일한다는 것, 글쓰기라는 것은 어떤 저항의 행동이자 혁명의 행동이고, 그래서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파친코』를 읽은 독자들이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5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파친코』라는 책도 굉장히 위험한 책이고, 위험한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이런 것까지 잘 이해하고 커버해줄 수 있는 출판사가 필요했다.(개역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것은) 작가 의도를 반영한 게 마음에 들었다. 이번 번역에선 원래대로 3부 구성으로 한 게 마음에 든다. 구판에는 소제목이 추가됐는데 그것이 없어졌고, 원작에 있던 ‘베네딕트 앤더슨’의 인용구도 그대로 옮겨져 있다. 구조, 인용구 등 제가 원한 것을 그대로 해줘 작가 의도를 더 많이 살렸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선자를 비롯해 선자네 4대 가족들의 꺾이지 않는 용기와 강인한 생명력이 무척 인상적인데.

“선자의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가장 큰 힘은 위대한 존엄과 도덕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패하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혐오스러워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이들의 인간성과 잠재력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싶었어요.”(이은정, 2022.7.26. <『파친코』 이민진 작가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에서 희망 발견">. 연합뉴스)

―소설 속 인물들이 정한이나 인간적 면모, 통일에 대한 염원 등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은 여러 인간적 면모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다른 세계의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다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뿌리’ 이야기를 한 셈인데, 왜 지금 뿌리 이야기를 해야 했는가.

“전 세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의 편을 좀 들어주고 싶었다. 우리가 X세대나 제트세대 등 젊은 세대에 아직까지 충분한 존중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들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젊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은 정체성에도 관심이 많다.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역사가 빠지면 의미가 없게 된다. 역사를 모르면 빈 깡통 같은 것이 되는데, 빈 깡통이 되지 않도록 역사적인 것을 채워주고자 뿌리를 다뤘다. 다만 역사를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는 식으로 사실만 나열하면 사람들은 재미없어 한다.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주면 좀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를 통해 뿌리 이야기를 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부산이나 오사카 사투리도 인상적이더라.

“한국에서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지역 색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는 것처럼, 사투리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한다.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느냐가 오히려 저에게 더 중요하다. 어떤 지역 사투리를 쓰는지, 말하는 방식은 어떠한지, 언제 쉬는지, 몸짓을 어떻게 하는지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어라는 언어는 존댓말이 없어서 차이가 좀 있다.”

―미국 주류 사회는 왜 이 소설에 주목했을까.

“처음 책을 출간한 것은 2017년이었다. 책 출간 직후 피츠버그 카네기홀에서 2000명을 대상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는데, 99%가 한국인이나 아시아인과 상관없는 백인이나 흑인이더라. 책을 실제로 구매해서 읽은 사람들 역시 대부분 백인 또는 흑인, 유럽 사람들이었다. 저는 19세기 유럽이나 미국 문학 작품을 좋아했고, 그런 책을 읽으며 작가로서 훈련했다. 제 소설을 보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19세기 소설 스타일이어서 그런 자독들에게서 호응을 얻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함께 저는 자본주의 비판이나 계급과 관련된 차별, 인종주의, 문화적 제국주의 등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영문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내용이자 도구이다. 처음에는 백인과 유럽 사람들만 책을 읽고 한국 사람들이 읽지 않았다. 왜 한국 사람들은 내 책을 읽지 않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처음 걱정도 했다. 다행히 최근 3년 사이에 많은 한국인이 제 책을 읽고 북 토크에 찾아와주고 편지도 써준다. 요즘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제야 아빠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제야 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 라고 얘기해주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일부는 혼자 읽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등과 함께 북클럽을 만들어서 대화도 하는 것을 보고 감사하고 보람찼다.”

―첫 출간 이후 벌써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저는 글을 아주 느리게 쓰는 작가다. 저널리스트처럼 취재나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쓰려면 거의 수백 명을 인터뷰하거나 많은 사전 연구를 한다. 인종차별, 계급차별, 혐오 등이 계속 생기고 있는데 인간의 본성 가운데 일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을 억압하려고 했고, 이런 부분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교 때에도, 학생 이민진은 늘 글을 쓰고 있었다. 각종 상을 휩쓸 만큼, 그것도 아주 잘. 하지만 직업으로서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엉뚱하고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어요. 작가의 길을 택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죠.”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엔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가 됐다. 그의 표현대로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며 살던 시기였다.

로펌 변호사가 된지 2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20대 또는 30대에 간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간질환은 20년 이상 지속돼온 그의 고질병이었다. 지금은 완치가 됐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질환이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좀 다르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 변호사를 그만두고 오랜 꿈이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길을 들어섰다. 이민진 문학의 원점이었다.

1968년 서울에서 세 자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이민진은 1976년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말수도 적고 친구도 없었다. 자연히 책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책과 상상력의 세계에서 그는 전능했다.

2004년부터 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2007년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첫 번째 책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자본주의와 월가를 비판한 책이었어요. 주인공이 쇼핑도 많이 하고 신용카드를 막 긋고 아버지와 자주 싸우죠.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되면 얼마나 안 좋을 수 있는가를 비판한 작품이었죠.”

2017년 두 번째 장편 『파친코』를 출간한 그는 현재 세 번째 장편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집필 중이다. 세 장편을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으로 그는 부른다. 앞으로도 한국인 이야기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책 『파친코』의 서문 <한국 독자들에게>에서 그는 한국인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쓴다고 말했다. “한류는 정말 대단하지만,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우리의 창작 활동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광범위한 인간성을 지닌 한국인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하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내게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다. 온갖 놀라운 상황들을 견디며 분투해 왔기 때문이다.”(7―8쪽)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에 대해 조금 알려달라.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인이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쓰고 있다. 교육이 사람을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교육과 사회적 지위, 부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다.(파친코라는 일본말에 이어 학원이라는 한국말 그대로 사용할 계획인지) 『파친코』를 출간할 때 세계 사람들도 알아야할 중요한 일본어라고 생각해 영어로도 파친코로 쓰겠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버버리라고 할 때는 영국의 브랜드 버버리에서 차용된 말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어를 차용해 많이 사용하는데, 외국 사람들 역시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 학원이라는 말과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선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학원이라는 말 역시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되는 한국어라고 할 수 있다.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도 우리말 학원을 그대로 고수할 예정이다.”
―최근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1990년대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우선은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한류가 붐을 일으키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소프트 파워나 문화 수출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안다. 영화감독, 배우, 가수 등 문화계에 계신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희생해 가면서 이룬 성과가 있어 지금의 한류가 만들어졌다. 미국에서도 저 같은 사람이 한류의 영향과 어우러져 시너지가 난 것 같다. 강영일씨를 비롯해 한국계 작가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숫자가 많아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최소한의 작가 수가 올라오면 저변이 형성이 돼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자이니치의 북송 사업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말해 달라.

“『파친코』 속에서도 주인공 한수를 위해 일하는 김창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북한으로 돌아가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캐릭터다. 스즈키라는 사람이 쓴 글에 따르면, 자이니치 가운데 속아서 북송되는 경우도 많았다. 쌀밥을 주겠다거나 아파트를 주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북으로 데리고 간 뒤, 죽거나 사라지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많았다고 하더라. 김창호를 통해 이런 부분을 담으려고 했다.(북한이나 탈북민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슴 아프고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영국, 미국, 호주, 일본 등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끼리 서로 괴롭힌 시기도 많았다. 지금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지만, 정전 체제이기에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좋은 해결책을 내야 할 문제다.”

―책에 사인할 때 ‘우리는 강한 가족(we are a powerful family)’이라고 쓰던데.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고, 같은 곳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족(We’re a family)’이라고 쓴다. 가족이라는 개념 말고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이번에 ‘파워풀’이라는 단어를 추가한 건 한국 사람이 파워풀한 사람이라고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더 많은 인정을 받아야 하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가족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면 못해낼 게 아무것도 없다. 저는 톨스토이를 읽을 때에는 공감하고 감정 이입해 보면 러시아 사람이 되고,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마치 영국 사람이 되는 것 같고, 헤밍웨이를 읽을 때는 약간 미친 미국 남자가 되는 것 같더라.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공감하고 감정 이입을 하다보면 그 사람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저는 농반 진반으로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들로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다. 제 책을 읽는 사람들도 한국인이 돼 한국인 시선으로 좀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모든 독자들이 한국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간담회 직전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적극적으로 사진 촬영에 응했다. 렌즈 안에는 호리호리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링이 있는 귀걸이,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 흰색 긴팔 셔츠와 흰 캐주얼 바지, 굽이 높은 샌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간담회를 사과로 시작한 그는 질문하는 기자들에겐 일일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뒤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답변하는 동안 두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고, 둥근 아이라인 아래에서 눈은 가끔씩 웃음에 잠겼다.

“한마디로 대답해 드릴게요,” 방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감사하다고 답변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울컥하던 그는 드라마 『파친코』나 애플TV 질문이 나오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 치의 동요나 흔들림도 없이.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 그것도 두 번이나. “저는 답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웃고, 울고, 응시하고.... 기자간담회는 단 두 권으로 유명 소설가가 된 이민진의 ‘1인극’ 같았다. 90분간의 공연 뒤에 남은 것은, 단 한 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 수백 명을 저널리스트처럼 인터뷰하고, 수많은 자료를 고고학자처럼 수집하며, 많은 증언과 자료를 교수처럼 분석한다는 선연한 작가 정신. 그날 손톱만한 굵은 빗방울이 탁탁 소리까지 내면서 창문을 들이치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거세게, 그리고 쉼 없이.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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