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쇼' 거부했던 돌고래 태산이, 무지개다리 건넜다
지난 6월 제주도 성산읍 앞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
2009년 불법포획 뒤 6년간 전시..2015년 야생방사
붙잡혔지만 길들여지기 거부해 돌고래쇼 안 나가
해양수산부 "부검 통해 정확한 사인 등 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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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야생방사된 남방큰돌고래 ‘태산이’가 고향 제주 바다에서 숨을 거뒀다. 불법포획으로 수족관에 있다가 바다에서 야생 무리에 합류한 제돌이를 포함한 5마리의 돌고래들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죽음이 확인된 것이다.
10일 애니멀피플 취재를 종합하면,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수컷, 27살 추정)가 지난 6월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 앞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당시 태산이의 머리는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지만 몸통과 지느러미는 온전한 상태였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날 “야생방사된 남방큰돌고래들의 등지느러미를 보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다르다. 주검의 등지느러미를 제주 남방큰돌고래 지느러미 색인과 대조해, 죽은 개체가 태산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와 제주대학교 돌고래연구팀이 부검을 진행했고, 현재 정확한 사인과 나이 등을 밝히기 위해 조직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태산이는 2009년 6월 제주 한림읍 귀덕리에서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로 포획 뒤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의 퍼시픽랜드(현 퍼시픽리솜)에 넘겨졌다. 이후 4년간 이 수족관에서 생활했지만, 쇼 돌고래로 쉽게 길들여지지 않아 대부분 내실에서 격리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2013년 서울시가 태산이보다 한달 앞서 포획된 제돌이의 야생 방사를 추진하며 태산이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가 먼저 고향 제주 바다로 방사되고, 2년 뒤인 2015년 태산이도 ‘단짝’ 복순이와 제주 함덕 앞바다로 돌아갔다. 6년 만의 귀향이었다.
방사 뒤 7년을 야생 무리에서 생활했다. 태산이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이재영 과장은 9일 “정확한 사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부검 결과가 정리되면 1~2주 안에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양보호생물종인 돌고래의 경우, 주검으로 발견되면 혼획이나 질병의 여부 등의 사인 조사가 주요하게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고래 주검 발견 사례보다는 발표에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 사연 많은 돌고래, 태산이는 누구?
추정 나이 27살. 자연에서의 남방큰돌고래 평균 수명이 40살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오래 살지는 못했다. 인간의 그물에 잡힌 태산이의 삶은 불운했지만 한편으로 굳건했다. 태산이는 2009년 6월 제주 한립읍 귀덕리에서 불법포획된 뒤 수족관업체 퍼시픽랜드에 팔려갔다. 태산이의 나이 14살 때의 일이다. 이때부터 6년간의 감금생활이 시작됐다.
비록 몸은 좁은 시멘트 수조에 갇힌 상태였지만 그는 길들여지길 거부했다. 과거 퍼시픽랜드에서 태산이를 다룬 적이 있는 사육사는 “태산이는 워낙 경계가 심해 처음부터 사람이 접근하는 걸 꺼렸다”고 2015년 인터뷰에서 전했다. 한달 앞서 포획된 복순이(암컷, 2015년 방사)도 마찬가지였다. 복순이는 주둥이가 비뚤어진 기형을 지닌 데다가 먹이를 거부하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윗부리가 없는 태산이는 이런 복순이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을까. 태산이는 수족관에서부터 야생 바다로 돌아갈 때까지 복순이 곁을 지켰다. 복순이는 태산이의 새끼를 두 번이나 임신했지만, 모두 사산하고 말았다. 돌고래 쇼에 나갈 수 없었던 두 마리는 주로 퍼시픽랜드 내실에 갇혀 지냈다.
그러다가 2013년 돌고래들의 운명을 가르는 일이 벌어진다. 복순이와 함께 그물에 걸렸던 제돌이가 서울시의 결정으로 바다로 돌아가게 된 것. 대법원은 불법포획돼 퍼시픽랜드에서 쇼를 하던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에 대해 몰수 결정을 내렸고, 돌고래들은 바다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그러나 태산이와 복순이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춘삼이, 삼팔이에게 순서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퍼시픽랜드에서 지내던 ‘돌고래 커플’은 이후 서울대공원으로 이사가 2년을 더 수족관에서 보내게 된다.(▶‘기형·우울증 돌고래’ 태산이 복순이의 약속)
‘귀향의 약속’은 마침내 2015년 5월 이뤄졌다. 태산이와 복순이는 같은 날 제주 함덕 앞바다 가두리(야생적응장)로 옮겨졌고, 그해 7월6일 가두리를 너머 야생으로 돌아갔다. 남방큰돌고래 무리에 합류하고 나서도 둘은 꽤 붙어다녔다고 한다. 2018년 8월엔 복순이가 갓 낳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태산이의 새끼였을까. 알 수는 없다. 서울대공원 사육 시절 복순이를 따라다니는 태지를 “한주먹” 하여 제압하던 실력으로 복순이를 계속 차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의 바람처럼, 어디선가 태산이의 새끼가 헤엄치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지숙 suoop@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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