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 슈미트의 조언 "젊은 학자들을 통제하지 마라"

최동순 입력 2022. 8. 1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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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수상자 브라이언 슈미트 인터뷰]
30세 때 우주가속팽창으로 기존 학설 뒤집어
"한국 노벨상 수상 시간 문제..인내심 필요"
"과학 성과 즉각 공유돼야" 기술패권주의 일침
노벨상 수상자 브라이언 슈미트 호주국립대 총장이 8일 서울 종로구 호주대사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밤하늘의 은하는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무수히 반짝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우리가 보는 은하의 대부분은 수백만 년, 수십억 년 전 출발한 빛이다. 우주의 팽창으로 먼 은하의 후퇴 속도가 점점 빨라져 빛의 속도를 넘어서게 되면 볼 수 있는 은하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우주는 어둠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브라이언 슈미트 호주국립대 총장이 1998년 처음 관측한 '우주가속팽창'이다. 그의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우주의 팽창은 빅뱅 이후 서서히 느려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우주를 가득 채운 물질의 중력이 공간을 붙잡아 팽창이 서서히 느려질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슈미트 총장의 발견으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게 새로운 정설이 됐다. 그 원인인 암흑에너지(Dark Energy) 연구도 본격화됐다. 슈미트 총장은 이런 공로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세계천문대회 참석차 방한한 슈미트 총장을 한국일보가 8일 주한호주대사관에서 만났다. 영문 직함(Vice-Chancellor)을 번역하면 부총장이지만 호주대사관에서 호주 대학 특성상 총장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고 알려왔다.

그는 겸손했다. 슈미트 총장은 "(저는) 대표로 수상했을 뿐 한 팀이었던 20명이 함께 이뤄낸 연구 성과"라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아직 기초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고 하자 이렇게 조언했다.

"저는 (이른 나이인) 27세 때 국제연구팀의 책임자로 활동했습니다. 창의적인 젊은 과학자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줘야 노벨상 등 기초과학 분야 성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호주는 젊은 나라임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아직 한국에는 기초과학 분야에 노벨상이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 노벨상 수상은 시간이 좀 걸리는 문제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우주가속팽창'을 발견하고 13년 만에 수상했다. 이 정도는 굉장히 단기간에 인정받은 경우다. 한국이 과학기술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게 25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정도의 투자로 따지만 10~15년 정도 됐다.

현재 한국은 투자와 연구, 국제적 활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서 모두 잘하고 있다. 경제 성장 대비 연구에 대한 투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굉장히 높다. 미래에 노벨상 수상이라는 성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 믿는다. 결국 타이밍의 문제다. 원래 시간이 좀 걸린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나 지원이 있을까.

"대부분 정부 투자는 배터리 효율화 등 실질적인 분야에 집중된다. 호기심에 기반을 둔 기초 연구에는 소홀하다. 하지만 노벨상을 탈 만한 성과는 대부분 우연한 발견에 의해서 이뤄진다. 그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젊은 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게 아주 중요하다. 창의력은 젊을 때만 키울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생길 뿐이다. 젊은 나이에 좀더 넓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자원은 나처럼 연륜 있는 연구자에게 많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경험 있는 연구자들이 젊은 연구자들을 도와주는 체계를 갖춰야 제대로 된 대학이고 연구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언을 해줄지언정 그들을 단속하거나 제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제 젊은 시절 호주에서의 연구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27세에 불과했지만 국제 협력이 가능한 연구팀을 이끌 수 있었다. 경륜 있는 학자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받았지만, 그들은 나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기존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발견인데, 의심이 들지 않았나. 언제 '유레카'를 외쳤나.

"사실 당시 실험은 우주의 감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7년 12월 함께 연구했던 애덤 리스(2011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가 데이터를 보내줬는데, 그 데이터는 우주의 감속이 아니라 가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실수를 한 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이후 우리는 6~8주간 연구를 다시 진행했다. 모든 단계마다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하지만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1998년 1월 8일 우리 결론을 팀 전체에 공유했다. 팀원들 역시 믿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점검했고 5~6주가 또 소요됐다. 마침내 2월 '이 데이터는 확실하다. 결과를 무시할 순 없으니 발표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세상에 공표했다.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기에 자신할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무지(unknown unknowns)'가 있을지 모르지만,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는 모두 확인했다. 그래도 어쨌든 불확실성은 남아있는 것이어서, 발표를 하면서도 불안하기는 했다.

옳다고 완전히 확신을 한 것은 2년이 더 지난 후다. 2000년 5월 우주 배경복사를 이용한 우주의 구성 성분 측정 실험이 발표됐다. 이 실험의 결과는 '우주 팽창이 가속화된다'는 가설이 있어야만 설명되는 내용이었다. 전혀 다른 연구에서 우리의 결론과 딱 맞아떨어지는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날 논문을 읽고 제 아내에게 말했다. '와! 우리가 옳았어.'"

-과거 강연에서 '과학은 경쟁하지만 또 공유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미중 중심의 기술 패권주의가 이런 과학계의 전통을 훼손하고 있다고 보나.

"우리 팀에서 저랑 애덤 리스 둘이 노벨상을 타긴 했지만 사실 연구는 팀이 함께했다. 우리 팀에 5개 대륙 출신의 과학자 20명이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주가속팽창'과 관련한 발견을 했던 버클리 연구소 팀에도 4개 대륙에서 온 과학자 40명이 있었다. 과학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특히 기초과학은 연구 성과가 만들어지자마자 아주 신속하고 투명하게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공유돼야 한다. 어떤 지정학적 이유에서건, 기초과학의 결과를 공유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저는 강력하게 믿는다. 다소 경쟁적인 그룹에 있는 기술이나 데이터라고 할지라도 공유는 필수다. 그래야 그 실험이 올바르게 진행됐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잘못된 결과를 기반으로 과학 연구가 계속되면 잘못된 결과만 나올 뿐이다.

물론 과학이 산업에 적용됐을 때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회사는 이윤을 내려 할 것이고 국가는 지적재산권을 가지려 할 것이다. 기업이나 국가가 과학적 발견이나 성취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경쟁과 공공선(collective good)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것이냐'는 것이다. 특정 국가가 성과를 이뤘다면, 그 외의 수십억 인구는 소외시킬 것인가? 옳고 그름, 기업의 이윤 창출·국가의 지적재산권과 공익 사이 어딘가에 우리는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젊은 나이에 이룬 위대한 학문적 성과는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다. 그 발견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나.

"장점은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였다. 그 발견을 한 게 30세였고 정확한 것인지 알기 위해 1~2년 아주 열심히 연구했다. 이후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어려운 점은 노벨상을 받은 뒤에 왔다. 계속 연구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 기로에 놓이게 됐다.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인들은 지금도 계속 연구한다.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은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노벨상의 의미는 좀 남달랐다.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러다 국가 교육에 공헌하는 일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고 기회가 와서 이렇게 호주국립대 총장까지 하게 됐다. 상상했던 업무도, 꿈꿔왔던 일도 아니었다."

-순수과학인 물리학자 출신이 산업화에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제가 기초과학보다 산업 연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단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기초과학을 통해 중요한 발견이나 지식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기술이 만들어진다.

여기 있는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결국 기초과학 연구의 산물이다. 카메라는 목성 관측 연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WWW 웹과 터치스크린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만들었다. 와이파이도 호주의 천체 물리학자가 개발했다.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었고 순수하게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기업은 절대 투자하지 않을 분야였지만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상품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변환(translation)이 필요하다. 대학의 아이디어 풀을 기업 파트너와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필요하다."

-한국과 호주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가 있다면.

"양국은 공통점이 많다. 모두 경제 번영을 추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해관계가 묶여 파트너로 삼는 나라가 비슷하다. 시차도 거의 없다. 한국은 아주 고도화한 산업과 연구가 있고, 호주는 광물이나 농업, 혁신적인 정부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많은 공통점을 기반으로 서로 보완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공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원 재활용, 탄소 중립, 그린 철강,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 반도체 등 많은 분야가 있다. 관심이 아주 많지만 아직 소규모인 우주 산업도 서로 협력할 수 있다. 힘을 합쳐야 한다. (지금 갈등하고 있는) 미국·유럽, 중국도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모두 한 AI 문화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규칙을 세워야 할 때가 온다. 한국과 호주는 각각 영향력이 큰 플레이어가 아니지만, 함께 힘을 모았을 때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우주는 언제부터 좋아했나.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프리카 유럽 등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아이들이 우주를 좋아하는 것은 꽤 보편적인 일(universal)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며 '저기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관심을 갖는다. 나도 그랬다. 알래스카에 살았는데, 세 살 때 개기일식을 봤고 일곱 살 때 혜성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 물론 나는 공룡도 좋아했고 날씨 변화에도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에 가려고 보니 기상학은 생각보다 과학과 거리가 있어서 천문학을 택했다. 당시에는 '천문학을 하면 물리학, 수학, 컴퓨팅, 엔지니어링을 모두 배우니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지'라는 생각으로 전공을 택했다. 저도 제가 천체물리학자가 될 줄은 몰랐다.

요즘 도시 밤하늘에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어두운 시골에 놀러 가 밤하늘의 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호주에 놀러 오는 것도 좋겠다(웃음). 어두운 지역의 하늘을 보면 정말 마법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별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이라도 달은 보인다. 달도 매우 신비롭다. 산이 있고 지형도 독특하다. 망원경 하나만 있으면 달을 관찰할 수 있다.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요즘은 우주를 소재로 한 SF영화도 많다. 최근에는 우주 개발도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그래도 제 생각에 우주는 언제까지나 불가사의(미스터리)한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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