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부잣집 도련님' 멘델스존을 위한 변론

입력 2022. 8.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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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위키미디어 커먼스

클래식 음악 작곡가에게는 저마다 붙은 별칭이 있다. 절대적 의미의 수식어는 아니지만 특징이나 업적을 바탕으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 '악성' 베토벤, '가곡의 왕' 슈베르트, '오페라의 왕' 베르디, '피아노의 시인' 쇼팽 등으로 불린다. 멘델스존에게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표현이 가끔 따라온다. 19세기 유럽에서 독일 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데 왜 그만큼 근사한 별칭을 붙이지 않을까.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태생부터 남다른 인물이었다.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칸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계몽주의 철학자였고,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독일에서 은행을 처음 운영한 은행장이자 베를린 시의회 의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철학, 미술, 음악, 언어, 문학을 망라한 분야별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펠릭스는 5개 국어를 구사했으며 인문학 전반에 탁월함을 보였다. 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괴테가 감탄해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란 멘델스존에 비하면 유치한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오케스트라를 생일 선물로 받을 만큼 부유했던 그는 분명 '부잣집 도련님'이 맞다. 하지만 38세로 생을 마감한 사인이 과로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멘델스존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력, 인맥, 기회,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유럽의 음악 역사는 멘델스존의 열성으로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멘델스존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프치히 음악 학교를 설립했다. 슈만과 함께 음악 교육에 힘썼고, 쇼팽과 같은 유망 음악가를 알렸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을 후원했다. 또한 라이프치히 상인들이 탄생시킨 최초의 민간 관현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첫 번째 지휘자로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2년간 지휘하며 키워냈다. 특히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100여 년간 묻혀 있던 바흐의 작품을 연주해 그의 존재를 알리고 가치를 알린 사건은 시대의 흐름을 바꿔 놨다. 당시에는 과거 음악을 다시 연주하고 감상하는 개념이 없었다. 위대한 작품을 알아본 최고의 해석자 멘델스존은, 바흐는 물론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악보를 사비로 구입해 연주하고 알림으로써 프랑스, 이탈리아에 쏠려 있던 음악의 관심을 독일로 옮겨 왔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꽤 오랫동안 푸대접 받았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멘델스존에 의해 재평가된 것이다.

그런데 생전에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멘델스존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많이 아쉽다. 게반트하우스 앞에 세워졌던 멘델스존 동상은 그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득했던 바그너와 유대인의 존재를 짓밟아 온 히틀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부서졌고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 성토마스 교회 내 안치된 바흐 무덤은 비교적 최근인 1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실제 바흐의 육신이 묻힌 곳이 아닐 확률도 높은데, 없던 무덤을 만들어 낼 만큼 바흐 기념에 정성을 쏟은 데 반해 멘델스존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바그너와 그의 추종자들이 '깊이가 없는 가정용 음악'이라 폄하해 온 내용을 정설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표제적 성격의 유명 작품만 듣고 '가볍다', '해맑기만 하다', '풍족하다 보니 고민이 없었나 보다'며 쉽게 얘기하는데 실내악곡을 비롯해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종교곡들의 숭고하고 진지한 모습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하다. 예술 감상자 중 꽤 많은 이가 불우한 환경에서 탄생한 작품은 후하게 평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작품에서 약점을 더 찾는다.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주입하고 멘델스존 음악을 금지하며 깎아내렸는데 작품 감상에 있어 우리의 편견은 전혀 없는 것일까.

'클래식 레볼루션 2022' 포스터. 롯데문화재단 제공

12일부터 21일까지 롯데콘서트홀에서 멘델스존의 가곡과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을 선보이는 무대가 있다. 걸작으로 꼽히는 곡들 외에 바흐의 칸타타나 수난곡을 연상케 하는 교향곡 2번, 19세기 최고의 실내악으로 평가받는 현악8중주를 비롯한 레퍼토리들이 눈에 띈다. 여기에 소프라노 황수미와 헬무트 도이치, 크리스토프 포펜과 김선욱, 이지혜, 클라라 주미 강, 문태국, 임윤찬 등 최고의 연주자들의 참여도 반갑다. 일정 기간 한 작곡가의 세계를 꾸준히 접하다 보면 그의 음악과 생애 전반의 스토리텔링을 긴 호흡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탁월한 심미안으로 바로크와 고전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시대를 개척한 일꾼 멘델스존. 그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공감의 폭이 좀 더 넓어지면 좋겠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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