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여름이 좋은 세 가지 이유

국제신문 2022. 8.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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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느 계절을 좋아합니까?”하고 물으면 대부분 봄이나 가을이라고 대답한다. 대략적인 통계에 의하면 봄과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각 40% 내외고 여름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각 10% 내외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10% 정도니 백 명 중 열 명이 될까 말까 하다. 이런 통계를 통해 사람들은 장마와 무더위를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이 갈수록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갈 것인데 그러면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여름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여기에는 나름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나는 여름에 태어난 여름 아이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내 생일은 여름에서도 제일 덥다는 대서(大暑)를 전후하여 돌아온다. 이 무렵 장마의 뒤 끝에 무더위가 절정으로 가는 찜통더위가 찾아온다. 그 더위 속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생일상 앞에 앉으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무더위에 나를 낳으시느라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슴이 울컥해져 눈시울이 붉어진다.

만삭의 어머니는 나를 낳기 위해 무더위뿐만 아니라 모기와 땀띠와도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 고생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그 마음을 헤아린다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는 위대하다. 특히 여름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는 더 그렇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나는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더 그려본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 했던가. 태어나면서부터 여름의 무더위에 적응해서 그런지 나는 겨울 추위보다 여름 더위를 쉽게 이겨내는 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여름을 즐겁게 보낼 줄 알기 때문이다. 여름 태생에 고향이 낙동강과 가까워 나는 물과 친하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나는 바다와 강 그리고 계곡을 찾는다. 유행가 가사처럼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도 되어보고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으며 풍광을 감상할 줄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물놀이를 절제하고 있다. 요즘은 계곡을 찾아 탁족 하면서 여름 과일을 먹으며 즐긴다. 때때로 시원한 그늘에 앉아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한가롭게 바라보는 것도 흥겹다.

여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의외로 많다. 스포츠 경기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치맥을 곁들여 경기관람을 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원한 극장을 찾으면 된다. 마음이 헛헛하면 에어컨 바람이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면 될 일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여름은 즐거운 계절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즐거움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여름을 즐길 줄 안다면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리라고 생각해본다.

마지막 이유는 여름이 서정적인 계절이기 때문이다. 한때 SNS 댓글에서 유행했던 ‘여름이었다’를 가지고 몇 가지 예를 들어 증명해보자. ‘배가 출출하여 국수를 말아먹었다. 여름이었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품했다. 여름이었다.’ ‘평소에 어렵게 쓴 아침 숲길 원고를 이번엔 쉽게 썼다. 여름이었다.’ ‘여름이었다’는 일종의 밈(meme)이다. 조리 없고 당치 않는 말을 썼더라도 문장의 끝에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그 글이 서정적으로 변하여 그럴싸해진다. 여기에서 여름은 서정적인 계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좋다.


여름은 사계절 중에서 꽃이 제일 많이 피고 지는 꽃의 계절이다. 그런데 찔레를 비롯한 여름의 꽃들은 거의 흰색이다. 여름의 흰 꽃은 흰옷을 즐겨 입으셨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나에게 여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여름은 기억 속의 어머니 아버지를 꺼내 보는 시간이 많은 계절이다. 그래서 다른 계절 보다 나는 여름이 더 좋다. 엊그제 입추(立秋)가 지났다. 아쉽게도 올해의 여름이 꼬리를 보여주려 한다. 매미 소리는 신생아 울음소리처럼 우렁찬데…

양민주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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