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美 석학들의 반성문

전설리 2022. 8. 1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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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외신기자센터에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만났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해 초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당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 같은 케인스 학파도 물가 자극을 우려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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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리 국제부 차장

2009년 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외신기자센터에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만났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기자회견에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그가 연단에 섰을 때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의 인기는 그만큼 높았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었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경제위기 해법과 관련해 연일 백악관에 쓴소리를 했다. 뉴스위크는 정부를 비판하는 그를 ‘노벨상급 골칫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크루그먼 물가 예측 오류 인정

세계적 스타 경제학자인 그가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반성문을 썼다. ‘제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틀렸습니다’란 제목의 글이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해 초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당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 같은 케인스 학파도 물가 자극을 우려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인플레이션 예측 모델을 이례적인 팬데믹이 닥친 2021년에도 적용했다”고 털어놨다.

크루그먼 교수뿐만이 아니다. 그를 비롯해 토머스 프리드먼 등 NYT 대표 칼럼니스트 8명이 과거에 쓴 칼럼의 오류를 인정하는 전례 없는 반성문을 냈다. ‘제가 틀렸습니다(I was wrong about…)’로 시작하는 NYT의 기획 시리즈다.

NYT는 민주당의 텃밭인 뉴욕시 맨해튼 미드타운에 본사가 있는 진보 성향 언론이다. 칼럼니스트들은 주로 진보 성향에 갇혀 중도·보수적 관점을 놓쳤다고 시인했다.

정치 전문기자 브렛 스티븐스는 ‘트럼프 지지층에 대해 틀렸습니다’란 제목의 반성문을 썼다. 스티븐스는 “내가 기자로 쓴 최악의 첫 문장은 ‘도널드 트럼프가 형편없다고 보지 않는다면, 당신이 형편없다’란 구절”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평생 보호받는 특권층으로 살아왔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낸 트럼프에게 열광했던 것이다. 그들을 무식하다고 비난해선 안 됐다”고 자기 고백을 했다.

 확증 편향 바로잡아야 성장

NYT가 이 기획의 서문에 썼듯 세계 각국의 당파주의는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인공지능(AI)은 ‘개인 맞춤형 콘텐츠’란 미명하에 ‘확증 편향’을 부추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자기중심적 왜곡을 심화시킨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저명한 칼럼니스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들이 사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류의 인정은 성장의 첫걸음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NYT는 “이렇게 함으로써 선의의 지적 소통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그것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오류를 인정함으로써 다시 신뢰를 회복해나가는 지식인층,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관용이 미국 사회의 성장을 이끄는 저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좀 다르다. 오류의 인정은 곧 약자가 되는 길이란 인식이 강하다. 경제 대국이란 ‘성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국가의 진정한 품격을 좌우하는 사회의 ‘내적 성장’은 소홀히 하고 있지 않나. 내적 성숙이 없는 성공은 미래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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