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공급망 수호" 박진 "국익·원칙 따라야".. 은근슬쩍 '기싸움'(종합)
'한미동맹 강화' 견제에 "중국과 화이부동" 응수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우리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발전' 기조를 염두에 둔 듯 '뼈 있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두 번째 대면회담에서다.
이에 박 장관 또한 '국익과 원칙'에 입각한 대(對)중국 외교를 강조, 중국의 일방적 요구나 압력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단 해석이 나오고 있다.
왕 위원은 이날 중국 오후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소재 지모(即墨)고성 쥔란(君瀾)호텔(나라다 칭다오 호텔)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확대회담을 통해 "한중 양측은 미래 30년을 향해 '독립 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며 "선린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사항을 배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 위원은 또 한중은 "'윈-윈'(win-win)을 견지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한다"거나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등의 말도 했다.
왕 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미중 간 전 방위 갈등 속에 지난 5월 출범한 우리나라의 윤석열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표방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국과의 접촉면을 꾸준히 확대해가고 있는 사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급망' '산업망' 등에 대한 왕 위원의 언급을 두고는 우리 정부가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주도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립멤버로 가입한 데 이어, 현재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 이른바 '칩4' 참여 문제까지 검토 중인 점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당국은 미국과 역내 동맹·우방국들 간의 각종 협의·협력체 신설이 궁극적으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독립 자주·다자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등의 왕 위원 발언은 추후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나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 상황 등을 겨냥한 서방국가들의 공세에 우리 정부가 가담하는 상황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또 왕 위원의 언급한 '중대 관심사항'과 관련해선 중국 당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운용을 뜻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왕 위원은 이날 회담에서 중국 옛 성현 공자의 어록 중 '삼십이립'(三十而立·나이 서른이 되면 확고한 신념이 서게 된다)을 거론,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온 한중관계는 당연히 더 성숙하고 더 자주적이고 더 견고해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박 장관은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좋게 지내긴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진 아니함)을 언급하며 "국익과 원칙에 따라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해가겠다"고 응수했다.
미국과의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구축 등 관계 강화도 국익과 양국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 등 원칙에 입각한 결정인 만큼, 한중관계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박 장관은 "한중 양국이 인류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상생·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이와 함께 박 장관은 북한의 도발 억제와 대화 복귀를 위한 중국 당국의 "건설적 역할"을 재차 당부했다.
또 그는 경제 분야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투자협상 타결과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관세 및 원산지 이점 활용, 그리고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등에 협력해줄 것을 중국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박 장관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기대한다며 "연내 왕 위원도 한국을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왕 위원은 이날 회담에서 전날부터 우리나라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 피해와 관련해 위로의 뜻을 전했고, 박 장관은 사의를 표시했다.
한중 양측은 이날 확대회담에 앞서 약 110분간 소인수회담을 진행했으며, 이 자리에선 북한 비핵화 등이 주로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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