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한국의 '칩4' 참여 설명에 왕이 "반도체 공급망 중국 배제 안 돼"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회담했다. 칭타오 시내 지모(卽墨)구의 지모고성군산호텔에서 열린 이날 회담은 장관과 소수의 배석자만 참석해 북핵·한반도 문제·지역 정세 등 전략적 관심사를 논의하는 소인수 회담을 시작으로 양국 관계 발전과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확대 회담, 만찬 협의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비공개로 진행된 소인수 회담은 당초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어 1시간 40분간 진행돼 최근 한반도 정세와 미·중 전략경쟁으로 비롯된 공급망 문제, 역내 안보 문제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서 박 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칩4’(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예비회의에 참석할 방침임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국익 차원’에서 ‘칩4’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 협의체가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한국이 예비회의부터 참석해 ‘룰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왕 부장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지금까지 성공을 이룩해 온 유익한 경험을 정리하고 양국관계의 큰 국면을 잘 파악해야 한다”며 독립자주 견지, 선린우호 유지, 상호 중대관심 배려,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 수호, 내정 불간섭 등 양국이 해야 할 5가지를 거론했다. 한국이 미국 쪽으로 기울어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된다. 또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점,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국익과 원칙에 따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며 양국이 ‘인류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자유·평화·번영을 위한 상생협력을 해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박 장관은 또 “북한이 도발 대신 대화를 선택하도록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며 “편리한 시기에 시진핑(習近平) 주석님의 방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한국 고위급 방문으로 이뤄진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중국 정책 방향과 기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회담은 윤석열 정부가 ‘한·미 포괄적 동맹 강화’를 내세워 글로벌 현안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각종 한·미 협의와 다자회의에서 보다 선명하게 미국 쪽으로 다가서는 모양새를 보인 이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이날 회담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한 3불(不)’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사드 3불’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 측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 내용이다. 중국은 이를 한·중 정부 간의 약속으로 보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가 간 합의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박 장관은 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제한받고 있는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수출이 다시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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