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비판 연구원 소속 기관에 과제 내역 일체 요구한 기재부
보건사회연구원 소속 연구위원
경향신문에 세제 개편안 지적
칼럼 게재 다음날 “자료 내라”
이용우 의원 “예산 볼모로 삼아
학자들 입막음 행위 중단해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이 세제개편안에 대한 비판 의견을 경향신문에 기고하자, 기획재정부가 해당 기관과 연구위원이 속한 연구실의 예산과 과제집행 내역 일체를 돌연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입막음용 겁박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관련 사례들을 모아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지난 5일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새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기업·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은 큰 반면 저소득층은 외면됐다는 게 골자다. 칼럼에서는 기준 중위소득 현실화에 소극적인 재정당국의 태도도 문제 삼았다.
4일 오후 가판에 칼럼이 공개된 직후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칼럼에 나온 표현 등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이어 다음날 기재부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를 통해 보사연의 ‘출연금 예산 및 과제 내역’을 긴급히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해당 연구위원이 속한 연구실의 ‘연구별 상세 예산자료’도 함께 요구했다.
예정에 없던 기재부의 예산 내역 요구에 해당 연구위원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통상 이런 행태는 기재부가 예산을 삭감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재부는 공공기관 구조조정과 예산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의 예산 ‘경고장’를 받은 연구기관은 ‘자기 검열’이 불가피하다.
보사연은 기재부가 요청한 자료 일체를 경인사연을 통해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경인사연도 보사연 측에 해당 칼럼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파악해볼 것을 요청했다.
경인사연 관계자는 “기재부가 보건사회연구원에 자료를 요청한 취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 보사연에 칼럼 게재 이슈가 있길래 칼럼의 사실관계를 한번 확인해보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용우 의원은 지난 8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활용하려는 고압적 태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학자들의 입을 막는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기재부가 예산을 빌미로 연구기관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학자들의 다른 견해를 이런 방식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예산 심의기간에 수시로 하는 통상적인 요청”이라며 “예산 수립에 참고하기 위한 자료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당 연구원이 칼럼 내용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판단해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며 “현황 파악을 위해 요구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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