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이익' 낸 은행들, 코로나 피해 계층 빚 감면은 외면
정부에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실 감면 비율 축소를" 요구
‘빚투’ 20·30 채무조정 논란의 불똥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실채권 매입 축소로 튀고 있다. 부실채권 매입은 지난 5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때부터 예고됐지만, 은행권은 9월 부실채권 만기연장 종료를 앞두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정부의 부실채권매입 감면율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역대급’ 이익을 낸 은행들이 같은 시기 피해를 본 자영업자 계층의 채무조정에 과도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9조원 규모의 2차 추경안에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새출발기금을 설립해 오는 10월부터 소상공인 등의 부실채권 최대 30조원을 3년간 매입하는 방안이다. 90일 이상 장기연체하거나 부실 우려가 있는 차주가 대상이다.
원금감면율은 60~90%를 목표로 했다. 재원은 정부가 기금 운용 주체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올해 1조1000억원, 내년 2조5000억원을 각각 출자해 마련한다.
당초 은행권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채무 일부를 변제해주자는 데 대해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달 14일 새출발기금을 포함한 ‘금융부문 민생안정과제’를 발표하면서다. 금융위가 가상통화·주식투자를 한 청년에 대해서도 특례로 채무조정을 해주겠다고 하자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
논란은 새출발기금의 ‘도덕적 해이’ 주장으로 이어졌고 소상공인 채무탕감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은행권도 가세했다. 주요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들은 이달 초 새출발기금의 원금감면율을 10~50%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에 전달하기로 했다. 채무조정 대상자 범위가 너무 넓다는 불만도 제기하고 있다. 새출발기금은 민간금융사가 부실 차주에게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채권(돈)을 정부가 직접 매입해 채무를 조정하는 만큼 원금감면율이 높아도 은행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행권이 반발하는 것은 새출발기금 감면율이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 채무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새출발기금이 흡수하지 못하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실 채권은 민간은행이 보유하게 된다. 차주는 상환이 어려우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채무조정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신복위는 금융사와 협의해 채무를 조정하는데 금융사로서는 차주와 신복위가 새출발기금과 동일한 수준의 감면율을 요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이 주장하는 원금감면율 10~50%는 평상시의 채무조정 프로그램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신복위 개인채무조정제도의 평균 감면율은 44~61%, 공적채무조정제도인 법원 개인회생은 60~66%이다.
금융위는 60~80% 수준의 원금감면율은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원금을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는 차주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 고령자 등 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한 금융공공기관 관계자는 “감면대상자의 90%는 경제 능력이 부족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틈을 타 은행권이 사익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안전운전에 소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보험 제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면서 “채무조정제도가 빚을 갚지 못한 개인을 도와주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들의 재기를 지원해 정상적으로 노동시장에서 활동하게 하는 국가·사회적 목적도 크다”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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