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잠겨 문 안열린 반지하.. 수마는 그들에게 더 가혹했다

박지민 기자 2022. 8. 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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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이 빗물로 가득한 모습이다. 지난 8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해당 빌라 반지하에 물이 지붕까지 차오르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40대 자매와 10대 딸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2. 8. 9 / 장련성 기자

지난 8일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건물의 반지하층에서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 어린이의 어머니, 이모가 집이 물에 잠겼는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소방과 경찰 등은 이날 오후 8~9시 안팎에 많은 비가 집중되는 바람에 반지하층에 급격히 물이 차오른 탓에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웃들은 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일가족은 사망했다.

이날 이 건물 주변은 하루종일 침통한 분위기였다. 사고가 발생한 이 건물 주변에는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날 오전 11시쯤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마다 양수기 등을 동원해 집 안에 들어찬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건물 역시 주변이 온통 흙탕물 투성이였다. 어린아이의 물건으로 보이는 만화책과 공책 몇 권, 곰인형 등이 온통 흙이 묻은 채 물웅덩이 위에 둥둥 떠다녔다.

이 건물 반지하의 66㎡(20평) 안팎 집에서는 네 사람이 살고 있었다. 12살인 초등학생 A양과 그의 어머니(46)와 이모(47), 그리고 할머니였다. 언니 이씨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었다. A양은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사고 당시 건강이 나빠 동작구 한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입원한 상태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웃들은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방과 경찰, 이웃들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8~9시쯤 이 일대에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A양의 어머니는 반지하층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다소 늦게 알아차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해도, 이미 복도에 물이 가득차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A양 가족은 소방과 경찰에 전화를 계속 걸었지만 당시 폭우로 통화량이 많아 연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 가족은 주변 이웃들에게도 연락해 “도와달라”고 했고, 오후 9시쯤 누군가 경찰과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경찰은 약 30분 뒤인 오후 9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은 오후 9시 2분에 첫 출동했으나 당시 다른 장소에서도 신고가 폭주해 관악구에는 출동 가능한 차량이 없었고, 구로구에서 급히 지원받은 소방차 1대가 9시 46분에 도착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인명 구조를 마친 추가 차량이 오후 11시 16분쯤부터 순차적으로 편성돼 현장에 추가로 보내졌다고 한다. 결국 최초 신고 시점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다음 날 9일 0시 26분에 세 사람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검안의 소견에 따르면 세 사람의 사망 원인은 익사”라고 전했다.

병원에 입원한 A양 할머니와 가깝게 지냈다는 한 주민은 “중국에 사는 할머니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려는데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현재 이들 가족의 시신은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에 임시로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들은 사고 당시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구조를 시도하기도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인근 주민 윤훈덕(35)씨는 “아내가 평소 얼굴을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 집 안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달려나왔다”며 “출입구엔 빗물이 가득 차 접근할 수조차 없어, 바로 집으로 달려가 망치를 들고 나와 창문 유리를 깨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했다. 전예성(52)씨는 “유리가 도저히 깨지지 않자 윤씨와 함께 쇠창살이 쳐진 반대편 창문으로 가 온 힘을 다해 창살을 떼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50년 넘게 살면서 물이 이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관악구에 따르면 A양의 이모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들 가족의 사망 소식에 인근 주민들은 슬픔을 표했다. 한 주민은 A양 이모에 대해 “말은 거의 못 나눠봤지만, 건물 안팎을 오갈 때 문 손잡이를 잡아주시는 등 따뜻한 분이었다”고 전했다. 전예성씨도 “이 가족과는 7~8년전쯤 비슷한 시기에 이 건물로 이사와 오랫동안 보며 지냈다”며 “건물 주차장 어귀에서 A양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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