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약자 보호 최소한의 수단..제로섬 넘어 인권 파이 키워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최민영 기자 입력 2022. 8. 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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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숙 국가인권위 조사관
최은숙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지난 3일 서울 명동 인근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 조사관은 “인권감수성은 내가 행복한 순간이 누군가의 고통과 연계돼 있을 수 있음을 헤아리는 데서 자라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2002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해온 21년차 베테랑이다. 1992년 동국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27세이던 1996년 ‘이것저것 억울한 건 무엇이든 물어보는’ YMCA 시민중계실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교복값 담합에 맞서 소비자 집단소송 및 교복공동구매운동 전국네트워크에 참여했고, 불법 다단계에 맞서 방문판매업 개정 활동 등을 했다. 2001년 인권위 준비 단계 때 합류해 검·경찰 및 법원의 인권침해를 비롯해 성차별, 스포츠, 장애 인권 차별을 조사해왔다. 그간의 조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떤 호소의 말들>(창비)로 엮어서 냈다.
목소리 알릴 수 없는 이들의 웅얼거림에 억울함 담겨 있어
오늘 당연한 일도 훗날엔 인권침해로 여겨질 경우 수두룩
억울한 마음에 우선 귀 기울이는 게 우리들의 마음가짐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귀가 큰 사람’이다.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나 억울한 목소리를 듣는다. 동시에 눈이 밝고 붓은 곧아야 한다. 사건을 조사해 세상에 알려 공론화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최은숙 인권위 조사관은 2002년 인권위 출범 원년부터 지금까지 만 20년째 이런 일을 해왔다. 그는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마이크가 없는 분들의 웅얼거리는 이야기들 안에 우리가 해결하려는 인권 문제가 담겨 있다”면서 “20년 새 인권감수성이 높아졌지만, 오늘 당연한 일이 훗날엔 인권침해로 여겨질 수도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사회에서 인권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명동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대학 졸업 뒤 학습지 교사로 일하다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 1996년 YMCA 시민중계실에서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의 꾐에 빠진 청년, 전세금 떼인 세입자, 의료사고 피해자를 비롯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었습니다. 대기업들의 담합으로 비싸진 교복값을 낮추기 위해 ‘전국교복공동구매네트워크’를 만들고 원가분석하고 집단소송도 했어요. 식당에서 판매하는 불고기가 정량인지 확인하려고 저울 들고 다니고, 학부모 부담이 큰 대학입시 전형료 정보를 대학들에 청구하기도 했고요. 초임 40만원에 야근이 일상인데도,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해결한다는 기쁨에 힘든 줄 모르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 어느 날 보니까 짝짝이 신발을 신고 출근했더라고요.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거죠. 시가에 맡겨둔 어린 아들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마침 인권위 출범 준비 소식을 들었고 시민운동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됐습니다.”

- 인권위 조사관은 어떤 일을 합니까.

“독립기구이자 준사법기구인 인권위는 인권 사안에 있어서 경찰·검찰·법원을 하나로 합친 격입니다. 조사관은 신속하고 빠른 구제절차를 위해 조사·법리판단을 하고 인권위 소위원회 또는 전원위원회에서 사건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결정이 나면 통지문을 쓰고, 이후 이행 여부도 살핍니다. 조사관 인력이 빠듯한 터라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다룬 진정 사건은 2000건 정도입니다. 진정인이 있으면 피진정인이 있으니까 최소 4000명 정도 조사한 셈이죠. 모든 사건에 대해 인권위 권고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법에 따라 조사 대상이 안 되면 각하되고요, 조사 결과 사실 또는 인권침해가 아니면 기각됩니다.”

-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요.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갓 출범한 인권위에서 저를 포함한 초보 조사관들이 고문 장소인 ‘특별조사실’ 현장에 갔을 땐 이미 깨끗하게 청소된 상태였는데, 침대 매트리스 깊숙한 곳에서 구타 도구로 쓰인 게 분명한 50㎝ 길이 경찰봉이 우연히 발견된 거예요. 이후 수사관들의 무차별 가혹행위가 드러나면서 담당 검사가 구속됐고, 특별조사실은 폐쇄됐죠. 하지만 담당 검사는 1년6개월 짧은 형기를 살고 특별복권됐더군요. 피해자는 잊혀졌고 그의 어린 아들은 이제 20대가 됐을 겁니다. 보람 있는 일을 꼽자면, 2014년 경찰이 술 취해 행패 부리는 주취자에게 모욕당했다며 현장체포하는 사례가 증가했어요.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죠. 세월호 참사 직후였는데, 경찰에 대항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엄단하라는 지침이 있었더라고요. 현장에 출동하는 말단 경찰관도, 사회적 약자가 많은 주취자도 크게 보면 모두 ‘을’인데 을들끼리 싸우게 한 거예요. 개인적 단죄에 공권력을 동원한다는 문제나 과도한 물리력 행사 등이 우려됐는데, 공권력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의도였겠죠. 조사를 통해 이후 정책권고로 이어졌습니다.”

- 출간한 책 <어떤 호소의 말들>은 조사관으로서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고작 통조림 2개를 훔쳤다는 혐의로 징역 1년을 살게 된 노숙인, 면허취소 조치에 대해 인권위 조사가 지연된 상황에서 생계가 막막해져 극단적 선택을 한 60대 고물 수집인 등의 경우입니다. 인권위에 진정 내는 분들이 약자로 살아온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 관공서에서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도 화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드물게 소리 지르고 욕하는 ‘악성 민원인’을 만날 때면 조사관들은 힘들지만, 그분들의 표현 방식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헤아려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추가 진정서를 팩스로 보내던 분을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한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교통범칙금으로 일당을 잃게 된 일용직이셨어요. 억울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러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건은 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합니다. 조사관들은 보이지 않게 그런 데서 많이 노력해요.”

- 조사관은 보통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죠.

“사건을 정확하게 기술해 정리가 돼야 이게 인권침해인지 아닌지 판정할 수 있어서 든 습관입니다. 그런데 육하원칙에 따라 질문하면 ‘내 말을 안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 쉬워요. 먼저 진정인이 하는 얘기를 들은 다음에 제가 묻고자 하는 질문을 합니다. 억울한 마음에 우선 귀 기울이는 게 조사관으로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정의한다. 한국에서 이 ‘인권’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인 것은 한 세대의 기간도 되지 않는다. 빠르게 뿌리내렸지만, 그만큼 아직 얕기도 하다. ‘나’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시민의식이 여물어야 할 때다.

- 지난 20년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체감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20년 전만 해도 경찰서에서 맞았다며 진정하는 사건이 많았어요. 자해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서 유치장에서 피의자의 안경 소지를 허용하지 않거나, 주취자가 소란을 피운다고 경찰서 바닥 말뚝에 묶어놓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당연하게 여겼지?’ 하고 놀랄 정도죠. 과거에는 군대 내 폭력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둔감했는데, 최근엔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인권위에 군 인권보호관이 신설됐습니다.”

- 지금도 그런 ‘맹점’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군요.

“2020년 기준 산업재해로 사망한 국내 인구가 2000명이 넘어요. 어마어마한 숫자죠. 그런데 여전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산재로 사망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이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요. 명백히 눈앞에 존재하는 문제인데 문제로 인식을 못하는, 또는 안 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연시된다고 언제까지 당연한 건 아닙니다. 과거 ‘인간의 존엄성’이 백인 귀족 남자에게만 한정됐다는 점을 떠올려보세요.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이었던 과거를 비롯해 이 같은 예가 수두룩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어린 학생들이 끼니도 거르면서 밤늦도록 공부하는 현실을 ‘세상에 그런 일이’라며 놀라워하는 미래가 올 수 있어요.”

공무집행방해죄 과도한 집행, 정책권고로 이어진 것 뿌듯
밀양송전탑 시위 때 주민 권리 보장 못한 게 가장 아쉬워
‘을’끼리 경쟁 프레임 곤란…인권은 가까운 타인 헤아려야

- 인권위 조사관으로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014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 당시 ‘인권지킴이’로 현장에 나갔는데, 주민들이 주장하는 환경권을 비롯한 권리 보장은 하지 못했어요. 인권이라는 게 최소의 수단입니다. 인권위가 하는 역할은 최소의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정도일 뿐, 그걸 집행하는 것은 정부 각 부처입니다. 그 간극이 커지면 인권위는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데 그치게 될 수 있어요.”

- 인권을 ‘제로섬 게임’처럼 인식하는 경향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해의 대표적 예로 교도소 수용자 인권을 증진하면 교도관 인권이 나빠진다는 인식인데요. 교도소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인권 수준도 저절로 높아지고 일에 권위가 생기며 좋은 직장이 되기 마련입니다. 환경을 개선해 ‘인권 파이’를 키워야 하는 겁니다. 학생인권을 부각한다고 교권이 침해되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는 그에 맞는 해법을 모색하면서 교사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을’끼리 경쟁하는 프레임이 되면, 제일 편한 것은 비용을 들여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관료들이에요. 일을 안 해도 되니까요.”

- 인권감수성은 어떻게 키우나요.

“수전 손태그는 <타인의 고통>에서 내가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누군가의 고통과 연계돼 있을 수 있음을 떠올려보라고 했지요. 인권감수성은 그걸 생각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밥상의 농산물을 마주할 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거주와 임금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처럼요. 인권은 멀리 있는 거창한 명제보다 가까이의 타인을 헤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달 전사’의 집착 내려놓는 것이 뒤처진 스포츠 인권 만회할 첫 단추




“한국에는 두 가지 스포츠가 있다”고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에서 일한 최은숙 조사관은 말했다. 생활로서의 스포츠와 ‘메달 따는 스포츠’다. 특히 국가 주도 체육정책과 엘리트 스포츠주의는 ‘메달 전사’로 어린 학생들을 육성하는 데 주력한다. “젊은 세대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어른들만 국위선양 강박에 사로잡혀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런 구조에서 선수들의 인권은 자리가 없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뚜렷한 발전을 이뤄왔지만 유독 스포츠계는 뒤처져 있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2008년 언론 보도로 폭로된 직후 정부가 근절대책을 내놨지만 2019년 빙상과 유도 종목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2020년에는 상습폭행과 갑질을 당한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그 사람들 죄를 밝혀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스포츠 4대악을 근절하겠다며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시켰지만 존재감은 희미하다. 최 조사관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번 나오는 대책은 이전 대책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라고 말했다. 폭언하고 폭행하지 않는 1차적 인권보장을 위한 노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비인기 종목인 육상, 체조, 근대5종 등은 국가가 체육중·고교에 예산을 투입해 선수를 양성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선수들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다. 최 조사관은 “어린 학생이 추간판탈출(디스크) 증세를 겪거나, 갈비뼈가 부러져도 이를 악물고 대회에 출전해 텀블링을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면담조사를 마칠 때마다 돌아서면서 속상해 매번 울었다”고 말했다. 그 구조 안에서는 아이가 성공하도록 선의로 다그치는 코치가 나쁘다고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두 시간 남짓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라 “조사관으로서 열패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공약에서 학생선수가 초·중등 의무교육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최 조사관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린 학생들을 운동 속에 고립시키고, 낙오되는 순간 갈 곳이 없어지게 만들면 아이들은 각종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견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운동 이후의 미래를 꿈꾸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스포츠를 생활의 일부로서 즐기고, 국가가 메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데서 스포츠 인권 개선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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