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반지하의 장애가족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진 9일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40대 자매와 10대 여아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모두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매 중 언니는 발달장애인이었다. 이들이 겪었을 참담함과 공포, 절망을 상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도로에 가득 찬 빗물이 폭포수처럼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전기가 끊겨 칠흑처럼 어두웠을 것이다. 부엌에선 하수가 역류하고, 화장실 변기는 푹푹 소리를 내며 오물을 내뿜었을 것이다. 이웃 주민은 “도로에 물이 허벅지까지 차면서 반지하 현관은 이미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인 남성 2명이 방범창을 뜯어내고자 했지만 몇 초 만에 물이 차올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기생충>은 허구지만 주인공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택은 엄연한 현실이다. 천장엔 곰팡이가 피고 바닥엔 벌레가 기어다닌다. 향을 피우고 초를 태워도 퀴퀴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창밖으론 자동차 바퀴와 사람들의 정강이만 보인다.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사생활이란 게 없다. 무엇보다 물난리에 취약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세상의 모든 빗물이 아래로 흘러 반지하에 모인다. 장마는 말할 것도 없고 소나기 먹구름만 몰려와도 겁이 난다. 이런 곳에 2020년 기준으로 32만7000가구가 살고 있다.
당초 반지하는 방공호나 참호 용도였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공습이나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 집을 지을 때 지하공간 마련을 의무화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주거난이 심해지자 가난한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세간을 놓고 살기 시작했고, 당국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묵인했다.
폭우가 며칠 더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비는 똑같이 내려도 재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지난해 9월 미국 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로 사망한 뉴욕 시민들의 상당수도 지하에 사는 저소득층이었다. 도시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반지하 주거지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자연소멸을 기다리며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반지하는 원래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니고, 사람이 살아서도 안 된다. 반지하 거주자들이 햇빛을 보고 침수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주거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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