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잔나비 논란, '락페'에 요구하는 예의

2022. 8. 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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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밴드 잔나비가 언론에 난타 당했다. 코로나19로 대면공연이 중단됐다가 최근 부활한 '2022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의 사건 때문이다. 잔나비는 서브 헤드라이너로 섰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공연했다는 뜻이다. 보통 마지막 팀이 그 행사의 간판인데, 이런 대형 페스티벌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무대에 서는 것도 상당한 위상이다. 잔나비는 오랜만에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서 흥분하고, 또 서브 헤드라이너로 선 것에 감개무량했던 것 같다.

보컬 최정훈이 무대에서 "저희가 2014년도 펜타포트 슈퍼루키로 시작할 때는 제일 작은 무대의 제일 첫 번째 순서였다. 야금야금 여기까지 왔다"며 "고지가 멀지 않았다. 한 놈만 제치면 되는 것 아니냐. 다음 팀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하고 싶다. 펜타포트는 우리가 접수한다. 여러분 이제 집에 가시라. '컴백홈' 들려드리고 저희는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무례 논란이 벌어졌다. 헤드라이너 가수로 성장할 것이고 펜타포트 최고의 공연을 하겠다는 내용인데 그 표현이 공격적이었다. 그 날 마지막 가수인 미국 밴드 뱀파이어 위켄드와 팬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잔나비 측이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꿈에 그리던 무대와 멋진 관객 분들 앞에 서 있다 보니 흥분에 못 이겨 가벼운 말로 타 밴드와 팬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 의도는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난이 터졌다. 사과에선 잘못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로 역풍만 불러일으켰다는 언론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지가 곤두박질쳤다는 냉정한 지적도 나왔는데 이게 그럴 정도의 일일까?

원래 록밴드들이 어느 정도 자유분방한 경향이 있다. 록음악 자체가 기존 사회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폭발적 에너지를 표현할 때가 많다. 그런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표출되는 장이 바로 록페스티벌이다. 록페스티벌 중에서도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국내 록페스티벌을 대표하는 행사로 유서가 깊다. 그런 행사가 오랜만에 초대형 규모로 치러졌으니 현장 분위기가 많이 고조됐을 것이다. 총 3일간 계속되는 행사인데 잔나비가 공연한 둘째 날엔 무려 5만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아티스트가 강하게 도취될 수 있는 규모다.

특히 잔나비처럼 한 계단씩 올라온 밴드는 크게 감격했을 것이다. 2014년 작은 무대 첫 번째 순서였던 밴드가 2022년엔 메인 무대 미국 스타 밴드 바로 앞 순서에 공연했으니 말이다. 이런 페스티벌의 간판은 서구 스타밴드일 때가 많아서, 그 서구 밴드 바로 앞에 공연하는 국내 밴드가 국내 최고 밴드로 인정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고조되는 분위기에 이런 감격적 개인사까지 겹쳤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호기로운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번에 나온 말도 그런 정도 수준이고 거기에 농담도 섞인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의 말에 '무례' 논란을 벌여야 할까? 그후에 나온 해명이 잘못된 사과라며 언론이 비판했는데, 그 해명이 사과라는 것 자체가 언론의 선입견이다. 잔나비는 해명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은 그것을 사과라 규정했다. 사과가 아니니까 사과의 내용이 없는 것인데 언론이 멋대로 사과라고 한 후 왜 사과를 부실하게 하냐며 공격했다.

최정훈의 최초 발언이 큰 잘못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한 결과 그에 대한 해명을 사과라고 지레 단정하게 됐다. 일단 사과라고 규정하니, 해명을 부실 사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언론이 얼마나 도덕적 단죄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렇게 페스티벌에서 나올 수 있을 법한 록밴드의 호기로운 말조차 하나하나 도덕의 잣대로 검열하고 단죄하는 것이 우리 사회 분위기이고 언론의 태도다.

대중예술인은 원래 끼가 많고 자유분방한 성향이 있다. 그런 예술인들의 끼가 발현되면서 대중예술도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대중예술인에게 누구보다도 모범적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항상 언론이 문제 삼는 것이 태도다. 말 한 마디 잘못하거나, 몸 자세 한 번 잘못 잡으면 바로 준엄한 처벌이 내려진다. 공포분위기다. 가장 열기가 뜨거운 록페스티벌의 발언조차 도덕률로 단죄한 이번 사건에서 그런 공포사회의 일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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