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과거 교육개혁 '실패'의 경험이 주는 단 하나의 교훈

이종규 2022. 8. 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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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8월31일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2021학년도 입시부터 적용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3주 전 수능 절대평가 확대를 뼈대로 하는 수능 개편 시안을 내놓은 뒤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교육부는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부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국가교육회의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숙의에 나섰다. 공론화를 통해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시민참여단 숙의의 결론은 참으로 어정쩡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시(수능 위주) 모집 비율도 늘리고, 수능도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거였다. 정시 확대와 수능 절대평가는 양립하기 어려우니 결국 ‘도돌이표’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시를 확대하자는 쪽도 축소하자는 쪽도 반발했다. 공약 파기 논란이 일었고 공론화 무용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나는 김상곤 장관이 수능 개편을 유예하고 공론화에 부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약이라는 이유로 그냥 밀어붙였다면 아마도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을 것이다. 시민참여단의 어정쩡한 결론도 어쩌면 ‘교육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건지도 모른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불투명성이 크므로 입시 공정성을 위해 정시 확대가 필요하지만, 지나친 점수 경쟁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중장기적으로 수능 절대평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파’와 ‘학종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보다 더 나은 결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공론화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난제임에 틀림없다. 열명에게 물으면 열개의 답이 나오는 게 교육 문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뿐더러 그 민감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교육적 관점에서 아무리 바람직한 정책이라도 논쟁의 한복판에 들어서면 절반 가까이가 반대하기 일쑤다. ‘선한 의지’로 도입한 정책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흔하다. 의욕만 앞세워 밀어붙일 경우 그 폐해는 훨씬 크다. 이런 교훈은 역대 정부 교육개혁 ‘실패’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서 ‘수능 9등급제’를 도입했다. 점수 한 점 차이의 변별력을 제공해온 수능의 골간을 흔드는 꽤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내신도 상대평가(9등급)로 바꿨다. 수능의 영향력을 낮추고 내신 비중을 높여 교육의 중심축을 학교 안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학들은 점수 없이 어떻게 학생을 뽑냐고 아우성쳤다. 급기야 서울대를 필두로 중·상위권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논술’을 앞다퉈 도입했다. 학교는 학교대로 극심한 내신 경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수능·내신·논술 삼중고)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2008 입시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은 ‘폭주’에 가까웠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오륀지’ 발언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숱한 반대에도 자율형사립고 100개 신설,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 공개, 대입 자율화 등 파급력이 큰 정책들을 취임 첫해부터 숨 가쁘게 밀어붙였다. ‘학교 만족 두배, 사교육비 절반’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사교육비는 폭등하고 학교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짓눌려 ‘정글’이 됐다. 2010년대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를 여는 데 ‘이명박표 교육개혁’에 대한 피로감이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눈에 띄는 교육 의제가 없다.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이명박 시즌2’로 불리는 국정기조와 윤 대통령의 저돌적인 스타일에 비춰볼 때 ‘윤석열표 교육개혁’을 밀어붙이면 제대로 사달이 날 것 같아서다. 물론 그가 “빈틈없이 발탁했다”고 자부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이미 큰 사고를 치긴 했다. 성난 여론에 초장에 ‘진압’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교육부를 경제부처로 여기는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어떤 반교육적인 정책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과거 교육개혁 실패의 경험이 주는 단 하나의 교훈은 ‘교육은 난제’라는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그것 하나만이라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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