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칼럼] 얀 필리프 렘츠마와 펠릭스 바일

한겨레 2022. 8. 9. 1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누리 칼럼]렘츠마와 바일을 보며, 우리를 돌아본다. 우리에겐 왜 그들이 없는가. 독일에서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교양시민(Bildungsbürger)의 전통이다. 부유한 자본가의 자식들도 휴머니즘 전통에 바탕을 둔 교양을 익힘으로써 보편적 인권과 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적 사상의 옹호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이자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코로나19로 인해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독일에 다녀왔다. 폭력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함부르크 사회연구소’(HIS)를 방문했다. 한국 사회를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폭력연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터였다.

명석한 인상의 젊은 소장 볼프강 크뇌블 교수는 연구소의 주요 연구 분야와 사업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특히 그가 들려준 연구소 설립자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함부르크 사회연구소는 독일 최대 연초회사 소유주의 아들인 얀 필리프 렘츠마에 의해 1984년에 세워졌다. 렘츠마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26살 되던 해에 전 재산을 상속받자, 즉시 유산으로 받은 모든 주식을 팔고 부친이 소유했던 담배회사와 일체의 관계를 끊는다. 이때 그의 재산은 700만유로로, 그는 졸지에 독일에서 150번째 부자가 된다.

함부르크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의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문학도 렘츠마는 자신의 거대한 재산으로 학문, 문화, 정치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는 늘 진보적인 작가, 사상가, 정치가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렘츠마의 활동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함부르크 사회연구소 창설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전례를 따르며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고자 했다. 기존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다루기 어려운 변혁적인 사상과 주제들을 탐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소를 꿈꿨다. 이런 의도에 맞춰 연구소의 이사진은 당대 최고의 진보적 학자와 지식인으로 꾸렸다. 아도르노의 제자로서 변혁적 사회학자인 헬무트 다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마르가레테 미철리히-닐젠, 독일 금속노조의 이론적 지도자 야코프 모네타,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알리체 슈바르처가 이곳에 모였다.

렘츠마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폭력연구였고, 과거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도 앞장섰다. 1995년 그의 연구소가 주관한 ‘국방군 전시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이 저지른 범죄를 폭로함으로써 독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전쟁 범죄는 나치돌격대(SS)의 소행이지 국방군은 책임이 없다는 “깨끗한 국방군의 전설”(한스울리히 타머)을 여지없이 깨부순 것이다.

함부르크 사회연구소와 렘츠마 소장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줄곧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와 펠릭스 바일을 떠올렸다. ‘부자집 상속자’ 렘츠마가 함부르크 사회연구소를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그 60년 전인 1920년대 초 부자 아버지를 둔 펠릭스 바일이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창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일은 아르헨티나와의 무역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곡물상 헤르만 바일의 외아들로 아버지의 재산으로 기존의 학계와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독립연구기관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인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이다.

렘츠마와 바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진보적 사상을 가진 ‘부잣집 자식들’이 독일 사회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오늘날 독일의 국가 정체성을 만든 발원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학자들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허버트 마르쿠제, 위르겐 하버마스, 악셀 호네트 등은 독일뿐 아니라 세계 지성사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함부르크 사회연구소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독일의 기성 학계가 터부시하는 주제와 과감하게 대결함으로써 독일을 좀 더 성숙하고 개방적인 사회로 만드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렘츠마와 바일을 보며, 우리를 돌아본다. 우리에겐 왜 그들이 없는가. 독일에서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교양시민(Bildungsbürger)의 전통이다. 부유한 자본가의 자식들도 휴머니즘 전통에 바탕을 둔 교양을 익힘으로써 보편적 인권과 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적 사상의 옹호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부유한 자본가들 사이에서 탐욕스러운 착취자의 모습이 아닌, 정의로운 교양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속물 자본가들이 활개치는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설 날이 올 것인가. 돈을 가지고 오로지 자신의 조야한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돈을 통해 사회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이상을 가진 자본가를 볼 수 있는 그날이 과연 올 것인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