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이재명의 도원결의는 안녕한가?
[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김기성 | 수도권데스크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하기로 굳게 약속하는 것을 두고 흔히 ‘도원결의’라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관우·장비가 복숭아나무 동산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데서 나온 사자성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지난 3월2일 ‘새로운 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정치교체를 위한 공동선언’ 뒤 후보단일화를 전격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경제·사회 곳곳에 촘촘하게 짜인 기득권 구조를 깨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현대판 도원결의였다.
하지만 이 후보는 대선에서 석패했고, 김 후보는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이 후보가 내려놨던 경기도지사에 도전한다. 이어 김동연 캠프의 70% 이상이 이른바 ‘이재명 사단’으로 꾸려졌다. 당시 민주당에서 ‘굴러온 돌’로 여겨졌던 김 후보는 쟁쟁한 의원인 경선 후보들을 제치고 경기도지사 후보가 됐다. ‘정책 연대의 연장선’이었다. 이후 김 후보는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에는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고, ‘정치 초보’였던 김 지사는 단숨에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의 결의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김 지사의 행보를 보면, 이런 결의가 얼마나 굳건했던 것인지 갸웃하게 된다. 우선, 민선 8기 정책 방향과 틀을 짜는 경기도지사직인수위원회에 ‘이재명의 사람들’을 배제했다. 대신 주로 자신이 근무했던 기획재정부 관료나 금융·경제계, 학계 인사 등이 자리를 채웠다. 민선 7기 정책의 계승과 발전을 결의했던 이재명 전 지사 쪽에서 바라보면 ‘색깔 빼기’와 ‘거리 두기’를 시도한 셈이다.
김 지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경기 지역 주요 공공기관장과 경제계·학계·종교계 인사들과 지역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 친목단체인 ‘기우회’에 가입한 것이다. 1980년대 초 조찬모임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우회는 군사독재 시절 사정기관의 정보 공유 장으로도 운용됐다. 이후 지역 유지 카르텔처럼 변질해 ‘도청 민원창구’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재명 전 지사도 “선거운동이나 청탁의 창구로 활용된다”며 2018년 탈퇴했다.
그런데도 김 지사는 지난달 22일 기우회에 참석해 “아주대 총장 시절 기우회 멤버로 활동했던 기억이 난다.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의 비판적) 논조를 봤지만, 주저하지 않고 나왔다”며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다시 가입했다. 더욱이 그는 “기우회원 여러분들은 경기도의 지도층 인사”라는 말도 했다. ‘기득권을 깨기 위해 결의를 하고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가 “지도층 인사”들의 모임에 제 발로 걸어간 셈이다. 누가 누구를 지도한단 말인가.
그뿐만 아니다. 김 지사는 지난 2일 경기도 공무원노조 임원진과 만난 자리에서 “투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다주택 소유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승진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실거주 목적 외 다주택 소유 간부급 공직자 승진 제한’은 2020년 7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경기도 부동산 주요 대책’의 하나로 시행됐다. 실제 시행돼 여론의 호응을 얻었지만, 김 지사는 한발 뺀 것이다. 일부 언론은 김 지사가 ‘이재명표 인사제도에 메스(수술용 칼)’를 댔다고 평가했다.
6·1 지방선거에서 김 지사는 15편의 ‘명작동화’(明作東花) 공약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이재명이 만들고 김동연이 꽃피운다’는 의미였다. 이재명은 물론 민선 7기와의 ‘정책가치 연대’ 선언이었다.
긴박하게 이뤄진 단일화가 ‘화학적 결합’으로 승화되긴 어렵다. 또 어쩌면 정치인이 자신의 정책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당연하다. 김 지사에게 ‘이재명표 정책’을 이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이유다. 하지만 어설프게 선명성만 강조하며 덧칠을 계속한다면 애초 내려던 제 색깔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김 지사의 도원결의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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