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이란 덧없고 하찮기 때문에 '계속해보겠습니다'[플랫]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twitter.com/flatflat38 2022. 8. 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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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창비|228쪽|1만3500원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우리도 ‘우리들의 해방일지’를 썼습니다. 아름, 그리고 푸름. 우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글쓰기 수업에서 만나 봄을 함께 보냈지요. 혹시 눈치챘나요? 청소년 학인과 하는 수업이 처음이었고 비자발적 프로그램이라서 제가 긴장을 잔뜩 했거든요. 만약에 둘 다 쓰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그림자처럼 달고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수업이 시작되면 근심은 사라졌어요. 매번 예기치 못한 감정과 감동에 폭 빠져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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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테면 이런 거예요. 그날 아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상담교사가 “불쌍한 아이네. 겉으로 봤을 땐 밝아보였는데”라고 동정했던 기억을 꺼냈죠. 비록 가정폭력 등 “폭풍이 지나간 인생”이지만 내 자신을 한 번도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이렇게 썼어요. “그저 버티고 생존해온 저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할 뿐이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중요하지 않아요. 나만 나를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곁에 두면 돼요.”

저는 조용히 환호했어요. 자신에 대한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해석권을 가져오는 낭랑 십오세, 최고다! 옆에 있던 푸름도 동조했습니다. “남들은 내가 열심히 살아도 평생 힘들 거라고 말했죠. 부모의 뒷받침이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에요. 아픔과 상처를 견디는 거지만 살아내고 있는 건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러곤 만세 삼창처럼 행복 삼창을 노래했죠.

“나는 내 상처를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아픔을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를 숨기지 않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푸름의 말이 비눗방울처럼 허공에 날리었고 사라질세라 저는 빠르게 받아적었죠. 별을 세 개나 쳐가면서, 글쓰기의 기쁨과 참뜻을 이토록 시적이고 간결하게 짚어내다니 천재 아닌가 놀라면서.

우리의 글쓰기는 탄력이 붙었습니다. 특히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던 아름이 몰입했죠. “글쓰기 이새끼 쓸데없이 매력있네” 중얼거리며. 뭐가 좋아? 물으니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재밌다고 했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섭식장애에 대해, 알바에 대해, 비혼모에 대해 읽고 썼죠. 막판에 지각을 해서 저를 애태웠지만 늦더라도 수업에 꼭 왔고 글을 완성했고 마침내 문집으로 묶어냈습니다.

글쓰기는 생을 사랑하는 첫 번째 작업이라는 말, ‘우리들의 해방일지’를 보며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화제의 드라마가 끝나고 우리들의 수업도 끝났지만 아름과 푸름이 중단 없이 읽고 쓰길 소망했죠. 글쓰기 수업 평가회의 때 만난 열림터 선생님들도 글쓰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을 위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셨죠. 고심 끝에 고른 책은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입니다.

이 소설은 아름과 푸름의 삶을 떠오르게 해요. 주인공이 소라, 나나, 나기 세 사람이에요. 소라와 나나의 엄마는 산업재해로 비참하게 남편을 잃은 후 자식을 돌보지 못해요. 슬픔으로 몰락할 권리와 양육으로 부서질 의무가 충돌할 때 언제나 모성이 이기는 건 아니므로 저는 이해가 되었어요. 다행히 나기의 엄마가 “새끼를 먹여본 손맛”으로 옆집 아이들인 소라와 나나 몫까지 도시락과 끼니를 챙깁니다. 밥은 피보다 진한가봐요. 세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같이 밥을 먹고 시시콜콜 일상을 나누는 푸름과 아름처럼 식구(食口)로 살아요. 무사히 어른이 됩니다.

아름이 수업 시간에 ‘언젠가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글을 썼죠. 아이를 보석보다도 귀하게 키우고 싶다,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던 문장이 인상깊었어요. 이 소설에서 나나는 임신을 했는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아빠의 자리를 치우기로 결심해요. 남자와 가족이 신뢰를 주지 못했거든요. 그런 결정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소설은 말하지 않아요. 다만 세상에는 다른 관계, 다른 가족, 다른 사랑이 있다는 걸 보여주어요. 그리고 아름이 불행하지 않은 삶의 조건으로 간파했듯이, 서로가 성실한 인연이 되어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의 마지막엔 이런 대목이 나와요.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저는 사람이 싫고 마음이 황폐하던 시절에 이 책을 읽었어요.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하찮음, 나약함이 생을, 사랑을, 인연을 중단할 이유가 아니라 지속할 이유가 된다는 말이 어려웠죠. 그래서 다 읽고도 옆에 두었는데 제목을 쳐다보며 어쨌든 계속해볼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아름과 푸름도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해도 제목 독서의 효과가 나타나고 계속해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기대해요. 내가 아는 두 사람은 천재니까. 글쓰기도, 삶도.


은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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