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사건' 보도에 대한 〈한겨레〉의 솔직한 고백

조선희 2022. 8. 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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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7월18일 〈한겨레〉 칼럼은 존재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7월15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한겨레〉가 어떻게 기사를 썼고, 어떤 고민을 했으며, 무엇을 수정했는지 등을 '솔직히' 밝힌 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7월15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해당 사건과 관련해 제목에 선정적·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 이름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한겨레〉는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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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터러시]
많은 언론이 ‘인하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을 선정적·성차별적으로 보도했다. ⓒ연합뉴스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7월18일 〈한겨레〉 칼럼은 존재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7월15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한겨레〉가 어떻게 기사를 썼고, 어떤 고민을 했으며, 무엇을 수정했는지 등을 ‘솔직히’ 밝힌 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과 무관하게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이 진실이 되는 탈진실의 시대에 나는 솔직한 뉴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기사에 쓴 사실과 지식, 근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사 앞뒤에서 명확하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는가? 비록 ‘인하대 성폭행 사망 사건’을 기사화하며 처음엔 선정적·성차별적 표현을 썼다고 고백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다른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제일 솔직하고 진실된 뉴스에 가까웠다.

사실 〈한겨레〉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칼럼에 밝혔듯 누리꾼들은 이번 사안에서 〈한겨레〉 보도를 칭찬했다. 대부분 언론사가 ‘나체로 발견’ ‘여대생 사망’ 따위 표현을 썼지만 〈한겨레〉 기사 제목엔 이 같은 표현이 없다는 이유였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에 따르면, 범죄·폭력·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 사건 발생을 알리려는 의도였더라도 ‘나체로’ ‘알몸으로’ 같은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묘사는 보도 윤리에 어긋난다. 또한 ‘여대생’처럼 직업이나 신분 앞에 ‘여’를 붙이는 것은 성차별적 표현이 될 수 있다. 내가 속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7월15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해당 사건과 관련해 제목에 선정적·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 이름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한겨레〉는 빠져 있었다.

언론도 칭찬해야 바뀐다

그야말로 ‘완전범죄’일 수 있었던 상황에서 〈한겨레〉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당일 오전 10시43분에 나온 기사 첫 제목에는 문제 표현이 있었고, 10시47분 편집자가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표현을 인지해 10시51분 기사를 수정 출고했다고. 정정보도나 반론보도에 인색한 한국 언론 관행상 이런 고백은 귀하다. 언론도 사람의 집합체인지라 틀리거나 실수할 수 있을 텐데 한국 언론은 이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다 명백한 실수가 나와서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아무도 모르게 ‘몰래’ 한다. 그래서 〈한겨레〉 칼럼은 더 반갑다. 이번 사안이 성차별·성범죄 보도윤리와 관련돼 있긴 하지만 비단 조직의 젠더 감수성만 보여주는 사례는 아니다. 한국 언론 최초 ‘젠더 데스크’ 이전에 최초 ‘시민 편집인’ ‘참여소통 데스크(현 소통 데스크)’ ‘저널리즘 책무실’을 둔 경험이 누적된 결과 아닐까.

칭찬이 과하다 여길 수 있지만 언론도 칭찬해야 바뀐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한겨레〉만 한 것은 아닐 거란 추측도 덧붙여본다. 실제 7월15일 오후 3시 민언련에서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나는 〈한겨레〉를 포함해 MBC와 〈시사매거진〉 온라인 기사 제목을 보며 문제 표현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MBC 제목은 ‘인하대서 피 흘리고 쓰러진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 착수’였고, 〈시사매거진〉 제목은 “[속보]인하대 재학생, 숨진 채 발견 ‘머리에 출혈’”이었다. 언론사 속사정은 모르지만 성차별적·선정적 표현을 줄곧 지적했던 시민들과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준 기자·데스크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다른 언론사들의 고백을 기다려본다.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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