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축산물 인플레 쇼크, 무능한 농식품부의 '탓탓탓'

세종=박소정 기자 2022. 8.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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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월 소비자물가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2개월 연속 6%대라는 기록을 쓰게 됐다. 특히나 지난달의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채 되지 않는 농산물 가격 폭등이 물가 상승을 부추긴 모습이다. 이런 성적표를 받아든 당일, 농식품 물가를 관리하는 주무부처 농림축산식품부는 원고지 33매에 달하는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요지는 “농식품부가 전방위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물론, 부득이하게 폭염과 장마가 연이어 찾아온 데 따른 작황 부진에다가 거리두기 완화로 인한 소비 증대까지 겹쳤다고 진단하면서다. 그러면서 배추·무·감자·양파·마늘·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계란 등 품목별로 정부가 추진 중인 수급 안정 대책을 총망라해 조목조목 나열했다.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고 ‘어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면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꺼내 썼다. 수입 원재료에 붙는 세금을 깎아 수입 물가를 낮추고, 이에 따라 국내 물가 상승세가 억제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수입 소고기·돼지고기 등에도 할당관세 0%를 적용했다. 하지만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따로 따져봐야 하는 문제다. 시행 2주가 흐른 지난달 말, 축산농가에선 수입산 가격이 되레 높아지고 국내산은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농식품부는 곧장 반박했다. 할당관세 효과가 실제 통계로 잡히려면 통관·유통 등이 이뤄지는 시차를 고려해야 하기에, 8월 초중순에나 가격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계 비교 지표로 잡은 갈비·갈빗살 등 부위의 가격도 대중적이지 않아 효과를 살피기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한우 등 국내산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은 할당관세 조치와 별개로 한우 사육 마릿수의 공급 과잉 등 추세적인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시차 탓, 통계 탓, 추세 탓이다.

농식품부 설명대로 정책 시행 3주가 흐른 지금은 어떨까.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산 갈비, 호주산 갈비, 수입 돼지고기 등은 모두 할당관세 조치가 시행된 지난달 20일보다 여전히 가격이 올라 있다. 이런데도 여전히 ‘무관세 적용을 받은 수입산 물량이 시장에 풀릴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똑같은 말로 일관할 것인지 궁금하다.

비슷한 논란은 커피 원두 면세 조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28일 커피 원두에 대해 부가가치세 면제를 시행한 데 이어, 지난달 20일엔 할당관세 0% 적용 품목에도 포함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커피값은 거꾸로 올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농식품부는 최근 “대규모 생두 수입 유통업체에서 이달부터 가격 인하 품목과 인하 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며 “부가가치세·할당관세 조치의 효과가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예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두달 가까이 지나서야 내놓은, 그것도 가격 인하 효과가 거의 없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의 자료는 또 다른 변명처럼 읽혔다.

관세를 건드는 물가 정책은 국내 농가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그 효과까지 미미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달 22일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저율관세할당(TRQ)을 적용해 외국산 마늘 1만톤(t)을 수입한다고 밝히자마자, 마늘 공판장에서 일제히 마늘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필 햇마늘 수확 시기에 이런 소식을 맞닥뜨렸다며 농민들은 뿔이 났다.

농식품부의 무능함은 최근 우윳값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의 가격 정책 개편을 두고 정부와 낙농단체 간 갈등은 1년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28일 상호 간에 신뢰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돌연 협상 중단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다른 경제부처와 의사소통할 때마다 농심(農心)을 내세우는 농식품부가 정작 낙농가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물가도, 농심도 어느 하나 잡은 것이 없는 셈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폭염과 잦은 비 등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환경이기에 물가 잡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 효과나 시기에 대한 자기 반성 없이 무작정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번 주 발표하는 추석 민생 안정책에는 변명보단 책임감 있는 말이 한마디라도 담기길 바란다. 정책 효과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되 이런 방책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상한 설명이든, 농가에 대한 미안함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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