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오세훈이 던진 또 다른 승부수 '한강'
10여 년 전 중국의 천년수도 서안을 여행했다.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유래됐다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실크로드의 길목이자 중국 고대문화의 꽃을 피웠던 도시. 특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 여행을 가기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일정 중에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눴다는 화청지라는 곳에서 중국 최초의 오페라 뮤지컬인 수상공연 '장한가'를 공연한다고 해서 들르기로 했다.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이 중국 미녀의 상징인 양귀비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일하는 공연이라 쉽게 볼 줄 알았는데 처음 보려고 했던 날에는 좌석이 이미 매진돼 볼 수 없었다.
다음날 공연을 보고 나서야 '장한가'가 왜 인기인 줄 알았다. 연못 뒤에 있는 여산과 육각정이라는 정각 자체가 배경이 되고 물 위에 설치된 무대세트가 신기할 정도로 조합됐다가 흩어지고 거대하고 화려한 조명 속에 와이어에 매달린 출연진이 물 위를 바람처럼 가르는 모습들이 정신을 쏙 빼며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며느리와의 사랑이라는 분노할 만한 불륜이야기를 매우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인데 중국 사람들은 역시 '구라가 세고 장사를 잘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후 가끔씩 고향(여주) 시장님들을 만나게 되면 남한강에서의 수상무대공연을 제안하곤 했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이 모셔진 영릉과 천년사찰 신륵사를 구경한 뒤에 저녁으로 매운탕을 먹고 밤에는 신륵사 앞 남한강에서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멋진 공연을 한 편 볼 수 있도록 수상무대를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여주는 서울시민을 위한 상수원보호구역이라 공장 하나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수도권 이점을 살려 문화관광을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지 지금껏 남한강 수상무대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얼마 전 다녀온 서울시장 해외 동행출장길(싱가포르, 베트남)에서 오세훈 시장이 열정을 담아 진지하게 꺼내 든 '그레이트 선셋 한강프로젝트' 발표가 반가웠다.
고향이라면 부모님에 이어 남한강부터 떠오르는 필자로서는 한강이 통도 크고 너무 멋진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한강의 반의반도 안 되는 센강이나 싱가포르 강보다 덜 유명하다는 게 서운했었다.
물론 한강이 강폭이 넓어, 좌우로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고 조명도 휘황한 외국 도심의 강들보다 태생적으로 불리한 면이 있지만 생각을 어떻게 하고 가꾸느냐에 따라서 그저 '황량하게 크기만한 강'이 아니라 통크고 대범해 낭만도 두 배가 되는 멋진 강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오 시장은 미래 연간 외국인 3천만명이 찾는 서울관광의 화두로 '한강'을 던졌다.
"관광하면 뭐 호텔이나 좀 벌겠지 하시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보셨지 않습니까? AI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침대 시트를 갈아끼울 수는 없어요. 선셋 한강라인'이 해외 관광객의 여행 수첩 맨 앞 장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석양거점을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한강 프로젝트의 핵심은 강변 객석에서 최대 3만 명이 대형 뮤지컬과 오페라, 음악공연 등을 즐길 수 있는 수상무대 설치를 포함해 런던아이(London Eye)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 서울아이(가칭 Seoul Eye), 조형미와 예술성이 느껴지는 지붕형 '선셋 랜드마크' 조성 등이 핵심이다.
오 시장이 강력하게 의지를 표명한 만큼 한강 관광 활성화를 위한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민선8기 들어서 오 시장이 가장 앞세운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시' 캐치프레이즈가 코로나 시대 지치고 힘든 시민들 위한 관념적 서사에 가깝다면, 서울관광 활성화를 위한 한강 프로젝트는 서울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절박하고도 구체적이며 확실하게 성패가 드러나는 정책 테마다.
지지부진하다면 한때의 말잔치로 끝날 것이고 성공한다면 몰려오는 관광인파와 예술성 있는 건조물 등이 그 성과를 오래도록 증명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불명예스럽게 감옥에 가긴 했지만 지금도 청계천만큼은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자 삶의 터전이고 쉼터이다. 흐르는 물은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게 하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명이 강에서 시작됐다.
오 시장이 장차 어떤 인생행로를 갈지 알 수 없지만, 서울관광 3천만 시대가 진심이었다면 최소한 '관광 오세훈', '한강 오세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승부를 걸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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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권혁주 기자 hjkwon205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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