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우윳값, 정부 인내 더 필요하다

이호준 기자 2022. 8.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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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원료인 원유 가격 책정 방식을 두고 정부와 낙농업계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달리 매기자는 정부안에 낙농업계가 반발하면서 양보 없는 대치가 이어진 지 벌써 몇달째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이달 초 결정됐어야 할 새 원유 가격 협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낙농가들이 원유 공급을 거부하면서 우유 가격을 밀어올리는 ‘밀크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극한 대치 중이지만 양쪽 주장에 ‘낙농·유업계 공멸을 막아야 한다’는 교집합은 있다. 10년 전 구제역으로 낙농산업이 궤멸될 상황에 처하자 정부는 생산비를 원유가에 보전해주는 ‘원유가격연동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국내에서 소비되는 음용유 양이 줄면서 문제가 생겼다. 우유회사가 사야 하는 원유의 총량과 가격은 정해져 있는데, 그 가격에 내다 팔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원유를 사와 분유 같은 가공식품으로 팔게 되면서 우윳값은 값대로 오르고 우유회사도 손해를 입는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개편안은 음용유는 지금처럼 가격을 정하되, 음용유 수요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는 이보다 300원가량 싸게 값을 매겨 매입하자는 게 골자다. 수요가 줄어드는데 계속 공급자만 고려할 수 없으니 시장원리를 일부 채택하고, 이참에 밀려드는 수입 유가공품에 맞서도록 낙농업계 체질도 개선해보자는 취지다.

문제는 줄어들 수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낙농가들이다. 정부안이 채택되면 당장 음용유를 제외한 원유는 생산비(ℓ당 840원꼴)보다도 낮은 가격에 시장에 내놔야 한다. 우유업체들이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원유 가격은 ℓ당 100원으로, 젖소들을 잘 키워 우유를 많이 생산할수록 농가가 손해를 더 크게 보는 구조다. 업계는 우윳값 인상의 원흉으로 원유가격연동제를 지목하는 것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원유 수취가격(기본가격+인센티브)은 25원 오른 반면, 우유 소매가격은 이보다 10배나 더 많은 260원이 올랐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최근 낙농협회와의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가 마련한 설명회에 협회가 조직적으로 불참을 종용하다 ‘괘씸죄’에 걸렸다는 소문도 들린다. 하지만 ‘생존권 사수’를 외치는 업계를 끝까지 달래고 설득해야 할 마당에 대화 단절까지 선언한 정부의 대응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협상일을 훌쩍 넘기고도 원유 가격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 우유업계의 태도도 수상하다. 개편안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우유회사 몇몇은 개편안을 핑계로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한술 더 떠 정부는 우유업계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낙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부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기업을 편드는 또 다른 시장세력을 보는 느낌이다. 가뜩이나 폭등한 사료값으로 낙농업계가 시름에 빠져 있다고 한다. 대화를 중단하고 협상을 무산시켜 상대를 궁지로 모는 대신,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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