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70년 만에 꽃 피운 물푸레나무
북유럽 신화에서 세상을 연 건 한 그루의 나무였다. 땅 깊은 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들어올리며 세상이 열렸다. 이른바 우주목 신화다. 이그드라실이라고 불리던 이 물푸레나무는 최고의 신 ‘오딘’이 사람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다. 라그나로크 전쟁을 치른 오딘은 이그드라실의 가지 하나를 잘라내 사람을 지었다. 결국 신화에서 물푸레나무는 세상을 열고 생명을 지은 최고의 나무다.
물푸레나무는 농경문화권에서는 매우 중요한 나무다. 목재가 단단한 데다 질기기까지 해서 농기구의 재료로는 최상급이었다. 적당히 자라면 모두 베어내 써야 했던 까닭에 크고 오래된 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푸레나무를 찾아낸 건 경기 화성시 전곡리의 마을숲에서였다. 나무높이 20m에 350년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물푸레나무다. 마을 당산나무이자 정자나무였던 이 나무는 한국전쟁 때 마을이 소개되자, 정자나무로서의 쓰임새를 잃었으며, 사람이 찾지 않는 나무는 당산나무로서의 지위도 잃었다.
나무의 가치가 인정되며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를 밟은 건 2003년이었다. 이때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의 기억에서 가뭇없이 사라져가던 늙은 물푸레나무가 꽃을 피웠다.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꽃핀 적이 없던 나무라는 게 바로 곁에서 70년 넘게 살아온 마을 노인의 증언이다. 나무가 꽃을 피워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의 상태를 꼼꼼히 조사하기 위해 사람이 드나들자, 나무는 반가움의 표시를 하려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연기념물 심사 과정을 거쳐 2006년 4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완료되자, 곧바로 다시 두 번째 개화를 이뤘다. 첨단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무의 신비다.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하는 큰 나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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