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근로자간 격차만 더 벌려"

김기찬 입력 2022. 8. 9. 01:00 수정 2022. 8. 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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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인터뷰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그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10여 년 정도면 선진국과 같은 노사관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우 부정적인 노사관계는 더 심화하고 있다. 통상임금을 포함해 현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 더 애절하게 노사 당사자와 정치권을 설득했다면, 청년들에게 덜 미안할 것인데…라는 반성을 하고 또 한다.”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더, 더, 더’라는 회한 가득한 심정을 토로하며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했다. 언론과 인터뷰는 2017년 7월 고용부 장관 퇴임 이후 처음이다.

이 전 장관은 2014년 7월부터 역대 최장 고용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학습과 경험에 기반을 둔 해박한 전문지식에 놀라고, 복잡한 쟁점을 알기 쉽게 정리해 내는 논리력에 감탄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과 입법 전략이 매우 구체적이고 치밀함에 두 손을 들게 된다.”

「 상여금 받는 근로자 25%뿐인데
법원 판결로 대기업·공기업 혜택

디지털시대 노동의 개념 달라져
법 규율 말고 노사 자율성 존중을

노동개혁 한꺼번에 빅스텝으로 해야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을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는 것은 시간도 없고 불가능하다. 빅스텝으로 한번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가 재임 당시 9·15 노사정 대타협을 끌어낸 것도 현안마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전략과 전술이 있었던 덕이다. 혼란이 일 때마다 노·사·정은 물론 정치권까지 그의 지략을 빌리고자 한 이유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그런 그가 최근 책을 썼다. 『노동시장 빅스텝』(사진)이다. ‘아들·딸 일자리, 넘어야 할 3개의 산’이란 부제가 붙었다. 노동개혁의 세 방향을 제시했다. 임금, 근로시간, 일반 해고, 비정규직 등 노동 강행 법규의 불확실성과 경직성 해소가 그 첫 번째다. 노사관계에서 힘의 불균형 해소가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게 자율을 보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Q : 책 제목을 ‘빅스텝’이라고 한 까닭은.
A :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처한 사정, 내부의 갈등을 고려할 때 점진적으로 하나하나 개선하는 것은 시간도 없고, 불가능하다. 고쳐야 할 것을 다 드러내놓고, 여론을 수렴해 한꺼번에 해야 노동개혁이 가능하다.”

노동시장 빅스텝

Q : 지난 정부에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것을 거의 다 줬다.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개혁에 동참하겠는가.
A : “지금까지는 임금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제도 개선을 했다. 앞으로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개혁이 필요하다. 임금이 아닌 소득의 개념으로 노동개혁에 접근해야 한다. 프리랜서 등 임금 근로자가 아닌 프로젝트형 일자리가 많아지고 있지 않은가.”

Q :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다단계 하청, 불법 실력행사. 정치권 개입 등 노동시장의 오랜 병폐를 노출했다.
A : “당장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버겁겠지만, 차츰 하도급 임금인상 등 차별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원청 노사의 양보가 아주 중요하다. 대우조선을 보면서 뉴욕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의 명판결이 떠올랐다. 빵을 훔친 피고에 대해 처벌을 고집하는 주인, 벌금 10달러를 선고한 판사, 그러고는 10달러씩 거둬서 피고에게 준 판사와 방청객. 훔치면 처벌받아야 하지만, 훔치지 않도록 같이 가는 모습이 진정한 사회다.”

Q : 법원의 판결이 경직성과 격차를 심화하고 있다고 책에서 지적했는데.
A : “사법부가 근로자와 사용자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만 보지 않은가 싶다. 공장 근로 시대의 이런 이분법적 분류는 디지털 혁명 등 노동시장의 급변으로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런데 판결에는 두 당사자만 있고, 경제와 사회가 없다. 예컨대 통상임금 판결을 보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서 통상임금으로 책정하는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수당 등이 확 올랐다. 한데 상여금을 받는 사람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속한 25%의 근로자뿐이다. 나머지 근로자에겐 혜택이 없다. 이 판결이 결과적으로 근로자 간 격차를 더 벌렸다. 사회에 미칠 영향을 안 본 듯 하다.”

Q : 법과 조율될 수 있는 개선 방법이 있을까.
A : “법으로 정해진 것 이외의 나머지는 당사자 간 약속을 존중하는 쪽으로 사법적 판단이 되면 좋겠다. 노사 합의로 기본급을 조정했는데, 한참 뒤에 “넣어라, 빼라”하면 자율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심지어 원청이 직업 능력 등의 향상을 위해 하청업체를 지원하는 것도 개입으로 본다. 합법 도급이 불가능하다. 자율성 존중이 선행돼야 노동시장이 활력을 얻는다.”
인사경영권 보호 조치 필요

Q : 자율성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보나.
A :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국가의 고용률은 74%를 넘는다. 한국은 65% 전후다. 한국도 소득 3만 달러가 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자율성이 얼마나 존중되고 있느냐에서 갈린다. 노동분배율이 높은 국가는 고용률이 높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분배도 잘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는 자율성이 상당히 높다. 법에 의해, 재판에 의해 규율되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을 안 쓴다. 고용률은 자율에 기반을 둔 유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Q : 전투적 노사관계를 희석하기 위해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A :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했다. 파업이 자유로워졌다. 무턱대고 공장을 멈추는 사태를 방지하려면 인사경영권의 본질에 관한 사항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파업 때 대체인력을 어느 수준에서 투입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할 때다. 부당노동행위도 경영계만 처벌하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 어긋난다. 처벌 대신 부당노동행위 이전으로 원상회복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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