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작은 자연, 다른 자연과 어울려 배우며 살죠" 시 부문 수상 문태준 시인[2022 박인환상]

김종목 기자 2022. 8. 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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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찰나서 뽑은 서정적 시어로
3년간의 제주 자연과 생활 담아
"오래된 새로움의 진경" 호평에
"큰 격려가 된다" 수상 소감

제3회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자로 <아침은 생각한다>의 문태준 시인이 뽑혔다.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한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문학 정신을 기리려 2020년 제정한 상이다. 심사위원단은 11권의 시집을 심사했다. <아침은 생각한다>를 두고 “ ‘오래된 새로움’의 진경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영화평론 부문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송보림 작가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선정됐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의 시로 유명한 박인환은 강원 인제 출신이다. 1949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일했다. ‘아메리카 영화시론’ 등을 발표한 1세대 영화평론가다.‘박인환상’은 강원 인제군과 인제군문화재단, 경향신문,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시 부문 상금은 3000만원, 영화평론은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5일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다.

문태준 시인은 2020년 여름 제주로 내려가 산다. 아내가 태어난 옛집 터에 ‘문정헌’이란 이름을 집을 지었다. 사진은 함께 지은 카페 ‘오롬마르’ 돌담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문태준 제공

문태준은 2020년 여름 제주로 이사 갔다. 아내가 태어난 옛집 터(애월읍 장전리)에 집을 짓고 ‘문정헌’(文庭軒, 글과 뜰을 둔 집)이라 이름 붙였다. 한라산과 애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곳”이다. ‘오롬마르’(산마루의 제주어)라는 이름의 카페도 차렸다. “집 짓고 작은 귤밭과 텃밭을 일구는 데에 꼬박 1년이 걸린 것 같아요. 밭담과 돌담을 새로 쌓고 밭에서 돌 캐고 풀 뽑고 하면서 장전리 시골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인터뷰는 e메일로 진행했다.

제3회 박인환 상 시 부문 수상작인 <아침은 생각한다>(창비)에서 시인은 제주 자연과 사물에 관한 ‘시골 사람’의 시선, 느낌과 생각을 펼쳐낸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를”(표제작 ‘아침은 생각한다’ 중) 살피고, “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 먹고 남긴/ 꾸지뽕 열매 반쪽을”(‘별미(別味)’ 중) 얻어먹는다.

‘별미’는 지난가을 어느 날 카페 쪽 꾸지뽕나무들 아래 떨어진 열매를 “새가 쪼아 먹고 또 벌레가 갉아 먹어 놓는” 걸 보고 썼다. 문태준은 이 ‘자연’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작은 자연이에요. 다른 자연과 어울려 사는 거죠. 자연은 왕성한 활동의 생명력을 보여주죠. 변화도 빨라요. 빨리 자라지만 또 때가 되면 쇠락해요. 그런 이치를 자연 속에서 살면서, 다른 자연과 어울려 살면서 다시금 새롭게 배우는 거죠.”

평론가 이경수는 이 ‘어울려 사는 것’을 두고 “문태준의 시의 세계는 위계가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나란히 함께 있는 연대의 세계”라고 평했다. 이 평을 두고 문태준은 “모든 생명 존재는 서로 대등하다는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주고받는다. 저것이 이것에 속해 있고, 이것은 또 저것에 속해 있다”고 했다. 시 ‘뿌리’에 ‘서로 엉킨 모든 생명 존재’에 관해 썼다.

“꽃나무와 풀꽃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엉켜 있다// 냉이가 봄쑥에게/ 라일락이 목련나무에게/ 꽃사과나무가 나에게”(‘뿌리’ 중). “우월하다는 생각, 하대하는 마음은 이익이 없어요. 그 사람이 기쁘면 내가 더 기쁘고, 내가 슬프면 그 사람도 슬퍼요.”

<아침을 생각한다>엔 ‘꽃’ ‘수평선’ ‘제비’ ‘감자’ ‘백사(白沙)를 볼 때마다’ ‘어부의 집’ 같은 제목의 시가 이어진다. 일상의 순간순간, 찰나의 풍경에 집중해 뽑은 서정의 시어들로 자연, 사람, 동식물의 존재와 의미를 드러낸다. 일상에 대한 집중과 관찰이 삶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수초를 닮은 어린 물고기가 더 깊은 수심(水深)을 찾아가듯이/ 어린 새가 허공의 세계를 넓혀 가듯이/ 코스모스가 오솔길을 저 멀리 따라가듯이”(‘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 중).

시인에게 일상에 관해 물었다. 그는 “뭘 애써 하려는 생각을 좀 덜 하려고 한다. 작위(作爲)를 줄여가려고 한다”고 했다. “요즘은 해가 일찍 뜨고 한낮은 엄청 무더워서 생활도 거기에 맞춰서 살아요. 일찍 일어나서 밀린 일을 하고, 대낮에는 햇볕을 좀 피해서 지내는 거죠. 제주에는 바람이 많고 센데 그것도 맞춰 살고 있어요. 지난겨울에는 제법 눈이 많았어요. 종일 빗자루로 눈 쓸면서 지낸 날도 있었어요. 눈 그치면 숨 돌리고, 또 눈 쌓이면 눈 쓸고요.”

이번 시집에도 고향에 관한 시를 냈다. ‘문정헌’은 시인의 고향인 경북 김천 시골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고향은 큰 뿌리 같은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일만가지의 일을 했지/ 그럼, 그렇고말고!/ 아버지는 느티나무 그늘이 늙을 때까지 잠잘 만하지”(‘아버지의 잠’ 중).

문태준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일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노동해온, 늙은 몸을 보는 순간 어떤 뭉클함 같은 것이 일어났어요. 지금 시골에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몸으로 해보니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날들의 어떤 난경(難境) 같은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되네요.”

이번 시집에서도 문태준은 여러 사람의 노동과 삶을 그렸다. 2018년 낸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의 ‘작가의 말’ 중 ‘세계는 노동한다’와도 이어지는 듯하다. 그는 “삶의 눈부신 순간과 캄캄한 고통,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애환, 신생과 쇠퇴, 세속과 칡넝쿨처럼 얽힌 일 등등 시의 서정은 어쨌든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종소리’는 노동과 종교의 심상이 어우러진 시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는 때에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람으로서의 내 목숨과 사람으로서의 엄숙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난과 적막, 그 신학적 미학’(차정식)이나 ‘극빈의 아름다움과 기억의 미학’(강민건) 같은 비평 글 제목에서 보듯, 경제학의 ‘빈곤’과 구별되는 ‘가난’도 노동, 연대의 시어와 맞물리며 이번 시집에서 이어진다.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한술 막 뜨고 있을 때 그이가 들어섰다/…/ 수레에 빈 병과 폐지 등속을 싣고 절룩거리며 오는 그이를/ 늦은 밤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식당의 여주인은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시간 후에 그이의 앞에 따듯한 밥상이 왔다”(‘밥값’ 중).

문태준은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종종 꼽힌다. “과분한 평가다. 다만 저는 시 짓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한 편의 시가 저한테 여전히 푸른 파도처럼 오고 있다는 것, 제가 시를 흰 종이 위에 받아 적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행복한 일이고요. 거리끼거나 얽매임 없이 시를 쓰고 싶어요.” 그는 “이제 좀 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심사위원단(조창환, 이숭원, 김행숙, 홍용희)은 “문태준의 시편들은 ‘오래된 새로움’의 진경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의 시적 체형과 체질은 매우 친숙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재래적인 상상의 추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편들은 마치 ‘새봄’을 맞이할 때처럼, 해마다 반복되면서도 늘 새로운 촉기를 느끼게 한다. 그는 깊은 시간을 호흡하는 내재성에 초월성을 결합해 내고 있는 것이다.”

문태준은 “너무 큰 격려가 된다”며 수상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어느덧 시인으로 살아온 지 서른 해가 다 되어 가는데, 앞으로 시인으로 살아갈 날의 밤에 이 상은 은은한 달빛이 제게 되어줄 거로 생각해요.”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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