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서 가열된 '하나의 중국 폐기'..열기 식히는 바이든
시행 땐 전략적 모호성 상실..백악관, 법안 변경 물밑 시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한 중국이 대만을 포위한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대응하면서 미·중 갈등이 한층 고조된 가운데 미 상원에서 발의된 ‘2022 대만정책법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진 상원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미국이 그간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기 위해 법안의 수위를 낮추려고 시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사진) 정부가 대만 정책에 대한 의회의 강경론을 식히느라 애를 쓰고 있다면서 대만정책법안을 조명했다.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등 여야 거물급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은 대만의 자위력 및 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법안 내용을 보면 대만에 4년간 45억달러(약 5조8700억원)의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대만에 수출할 수 있는 무기의 개념도 방어용을 넘어 ‘공격을 억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기’로 확대했다.
또한 대만을 ‘주요 비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으로 지정토록 했다. 주요 비나토 동맹은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나토 회원국 수준으로 대우한다는 미국 국내법 용어로서 한국, 일본 등 18개국이 이에 해당한다.
인터넷 매체 디스패치에 따르면 법안에는 중국이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 대만의 국제기구 활동 및 무역협정 가입을 증진한다는 조항도 있다. 미 당국자와 대만 카운터파트 간 양자 교류를 제한하지 못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사실상 대만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편입시키는 내용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을 거쳐 1979년 국교를 수립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국교 수립 해에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신 대만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은 지금까지 대만 정책의 근간이 됐다. 미국 정부가 대만 정부를 ‘정부’라고 부르는 대신 ‘당국’이라고 지칭해온 것도 대만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제안된 대만정책법이 시행된다면 미국이 그간 대만에 관해 견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은 사라지게 된다. 중국이 중대한 도발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고 미·중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게 뻔하다.
이 때문에 백악관은 법안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에이드리엔 왓슨 대변인은 이 법안이 바이든 대통령이 펼쳐온 외교적 노력과 배치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가 활동할 외교적 공간을 너무 협소하게 만들고 부담을 키운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이슈가 되면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가능성이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대면 회담 전망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
반면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중국을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법안 공동 발의자인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우리는 법안의 건설적인 변화에 열려 있지만 목표는 대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지 약화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 의회는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9월 이후 이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하원을 거쳐야 하며 최종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이 남아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의회와의 대립이라는 부담을 지게 된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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