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파워에 '칩4' 참여 유력..중국의 보복은 우려
미 원천기술 보유, 불참 땐 일본처럼 산업 쇠퇴 가능성
참여 땐 최대 시장 중국 자극…또다른 ‘한한령’ 예상도
미국 주도로 한국·일본·대만까지 묶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Chip)4’에 참여하는 것이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정부가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예비회의에는 들어가 칩4 참여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8일 용산청사 출근길 문답에서 칩4 참여에 대한 질문에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답했다. 한국이 칩4에 참여할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스마트폰·데이터센터·전략무기 등에 필수적인 반도체는 글로벌 공급망이 지역별로 분업화돼 있다. 예컨대 애플 아이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일단 영국 기업인 ARM의 설계자산(IP)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또 미국 기업인 시놉시스와 케이던스의 설계자동화 프로그램(EDA)을 활용해 대만 TSMC에서 5나노 공정으로 주문생산된 제품이다.
TSMC는 일본 등에서 만든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웨이퍼에 바른 뒤,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장비를 이용해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린다. ASML의 노광기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들여왔다. TSMC에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 대부분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램리서치·KLA 등 미국 기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플 모바일 AP는 중국 팍스콘공장으로 보내져 아이폰에 탑재된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제작에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등 6개 지역이 참여하는 모양새다. 다만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조립·테스트·패키징 등 후공정 부문에서 제한된 역할을 한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은 크지 않은 반면, 미국의 영향력은 상당하기 때문에 반도체 전문가들 상당수는 한국의 칩4 참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산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은 다수의 반도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자국 기술 통제로 외국의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조치로 쇠퇴하기 시작한 이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의 참여는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K반도체의 최대 수출시장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소비 규모는 1430억달러로, 세계 반도체 시장(4404억달러)의 33%에 달한다. 중국에선 2013년부터 반도체가 원유를 제치고 수입 1위 품목으로 부상했는데 한국산 반도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까지 지었다. 중국이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자, 메모리 생산기지가 된 현실에서 칩4 참여는 진퇴양난의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됐다.
칩4의 일원이 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건 중국의 무역보복이다.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갈륨이나 실리콘, 텅스텐 같은 중국산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현재 중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제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자립을 하기 전까지는 한국 반도체에 대한 제재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다만 2016년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내렸을 때 중국 정부가 ‘한한령’ 등에 나선 것처럼 다른 산업을 상대로 보복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참여하는 칩4 예비회의에서는 칩4의 세부 의제와 참여 수준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등 논의를 이끌 가능성도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와 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은 중국에 있는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에 28나노급 이하 반도체 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 조항이 있지만, 중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에 들어가는 장비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면서 “칩4에 참여할 경우, 한국 기업의 중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에 장비가 들어갈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등 중국 비즈니스에 타격이 덜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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