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으로 보여주겠다"더니..박순애 부총리, 정책으로 낙마

김유나 2022. 8. 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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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으로 논란이 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음주운전 이력 등 각종 논란을 뚫고 임명된 지 35일, 취학 연령 하향 정책을 발표한 뒤 열흘 만이다.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장관이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명 35일만에 낙마

박 부총리는 이날 오후 5시30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직에서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받은 교육의 혜택을 국민께 되돌려 드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달려왔지만 많이 부족했다.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의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 불찰”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35초간 사퇴문을 읽은 그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박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내리겠다”는 학제 개편안을 발표한 뒤 열흘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날 오전 8시10분쯤부터 박 부총리가 자진 사퇴할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그는 8시간 넘게 침묵을 지켰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3시까지도 “박 부총리는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을 준비하며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밝혔으나 오후 4시40분쯤 돌연 “거취 관련 입장 표명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박 부총리는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으나 사실상 경질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 부총리가 사퇴함에 따라 학제 개편안은 자연스럽게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재임 36일째인 이날 사퇴하면서 박 부총리는 역대 교육부 장관 중 다섯 번째로 단명한 장관이 됐다. 역대 교육부 장관 59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3개월이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서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음주운전 등 과거 논란 지속…‘만 5세 입학’이 결정타

박 부총리는 지명 직후부터 숱한 ‘과거’ 논란에 시달렸지만, “정책으로 지켜봐 달라”며 꿋꿋이 부총리직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결국 그가 강조했던 ‘정책’에 발목을 잡혀 낙마했다. 교육계에선 박 부총리가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박 부총리 임명이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라는 것이다.

박 부총리는 지난 5월 후보자에 지명된 직후부터 음주운전 전력, 조교 갑질 의혹, 논문 중복게재 의혹 등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지난달 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반성하고 있다”며 “조금만 지켜봐 주시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녀 생활기록부 불법 컨설팅 의혹 등 과거 행적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박 부총리는 ”언론에서 정책을 평가하지 않고 개인적인 사안을 물고 늘어진다”며 서운해했고, 이런 논란을 털기 위해 ’박순애표’ 정책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취학연령 하향’, ‘외국어고 폐지’ 등의 정책을 갑작스럽게 던진 배경에도 이 같은 정책 욕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업무보고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던 그의 의도와 달리 업무보고 후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후폭풍을 맞게 됐다. 박 부총리는 이후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떨어지는 등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자 결국 사퇴를 택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계에선 행정학자 출신인 박 부총리가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교육정책은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큰 만큼 신중하게 발표해야 하는데, 설익은 정책을 서둘러 발표한 것 자체가 박 부총리의 낮은 교육 이해도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이번 (인사) 실패는 비전문가에 의한 아이디어 차원의 교육정책 결정 시행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향후 교육부 장관 임용 시 교육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임용해달라”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교육철학 없이 성과 내기에 급급하면 언제든 이러한 사태는 되풀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온가족 풀브라이트 장학생 의혹’으로 김인철 후보가 낙마한 뒤 깜짝 발탁된 박 부총리까지 한 달 만에 사퇴하면서 교육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교육부 앞에는 ‘유보통합’,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등 쉽지 않은 과제들이 쌓여 있지만, 또다시 수장 공백 상황을 맞으며 난항이 예상된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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