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황제 코끼리

한겨레 2022. 8. 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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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민하민은 드라마 방영 닷새 전에 '내 이름은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란 시를 썼다.

어린이 시인은 먼저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만든 황제가 타는 황제 코끼리"란다.

그런데 꿈에서도 황제 코끼리는 황제라야 탈 수 있기에 이 시는 다시금 이렇게 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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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게티이미지뱅크

이안 |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민하민은 드라마 방영 닷새 전에 ‘내 이름은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란 시를 썼다.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우영우보다 민하민이 먼저 나와 다행이다.

“내 친구들이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르고/ 내 형도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르고/ 내 엄마 아빠도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른다”(전문, 서울양강초 3학년).

하민이는 며칠 전에 전학을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친구들에게, 또 처음 만난 나에게 잊히지 않는 방법으로 자기소개를 한 시다. 각 행의 첫 글자가 “내”고, 그다음에 오는 말이 “친구들” “형” “엄마 아빠”다. 이들은 주로 ‘나’와 관계 맺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친구들과 형이 부르는 민하민에는 느낌표가 찍혔고 엄마 아빠가 부르는 민하민에는 느낌표가 없다. 전자엔 유쾌한 놀이와 장난의 어감이, 후자엔 다정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각 행 끝만 읽으면 “부르고” “부르고” “부른다”이니 새로 전학 온 이 학교에서도 자기 이름이 이렇게 불리고 불리고 또 불리기를 바라며 자기로서는 기꺼이 이를 허락하고 환영한다는 뜻이 담긴 배치이겠다. 나는 이렇게 불리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희도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불러 주면 좋겠어.

모두 다섯번 시 쓰기 수업 중 두번째 시간. 재미난 시를 우연히 발견했다. 지난번 수업에서 가르친 시가 가지런히 적힌 공책 아래쪽에서 그것은 반짝이고 있었다. 한 행을 한 연으로 배치한 5연의 간소한 구조물인 그것은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의 보자기에 무심한 듯 덮여 있었다. 이 말을, 이 코끼리를, 이 황제를 어떻게, 누가 일으켜 움직이게 할 것인가. 어린이 시인은 먼저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만든 황제가 타는 황제 코끼리”란다. 황제 코끼리가 멋진 건 황제가 타는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멋진 코끼리 위에 황제가 있어서 황제가 가장 높은 줄 알았는데 그 황제를 자기가 만들었다니 자기야말로 얼마나 더 높고 멋진 존재인가. 그래서 다음 연은 이렇게 온다. “아주 멋진 코끼리 레고로 만든 코끼리”.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재밌어진다. 처음에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라고 했으므로 자기가 황제를 만들었어도 자기는 황제가 아니어서 이 코끼리에 탈 수가 없다. 이 불가능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꿈을 불러와 앉힌 다음 거기에 훌쩍 올라탄다. “꿈에서 한 번 타 봐야지” 하고. 그런데 꿈에서도 황제 코끼리는 황제라야 탈 수 있기에 이 시는 다시금 이렇게 도약한다. 다름 아닌 자기가 “황제가 되는 꿈에서”라고 말이다.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 내가 만든 황제가 타는 황제 코끼리// 아주 멋진 코끼리 레고로 만든 코끼리// 꿈에서 한 번 타 봐야지// 황제가 되는 꿈에서”
(박준영, ‘황제 코끼리’ 전문, 서울양강초 3학년).

어린이가 쓴 시 중에는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의 지도가 그려진 경우가 적잖다. 자기도 모르게 표현된 문장부호, 반복, 행과 연의 배치에는 탐색해 볼 만한 어떤 무의식이 개입돼 있는 것 같다. 민하민은 관계 속에서의 호명을 통해 반짝이는 기쁨을 찾는 것 같고, 박준영은 내면에서 하나씩 맞추어가는 건축 행위에서 은은한 기쁨을 찾는 것 같다.

“제일 친한 친구랑 싸웠다.// 이 것 저 것 예쁜 거 내가 가지겠다고”
(홍하은, ‘싸운 날’ 전문, 서울양강초 3).

1연 끝에 있는 온점이 2연 끝에는 없다. 친구와 싸운 다음 후회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하은은 그런 마음을 찍지 않은 온점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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