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명부 등사 거부' DB하이텍..소액주주와 골 깊어지나 

백지현 입력 2022. 8. 8. 18:09 수정 2022. 8. 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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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연대, 물적분할 반대 결집
시장선 '의도적 주가 낮추기' 의구심

시가총액 1조원에 이르는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을 두고 소액주주와 사측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주 회사가 주주명부 열람 요구에 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결집 3주만에 지분을 2% 넘게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사측이 소액주주 연대 명의로 요청한 명부 등사(복사)를 거부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가처분 소송을 검토하겠다며 사측에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주주명부 열람만 허용에 가처분 소송 검토 

8일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사측은 주주명부 등사를 거부하고 직접 회사를 방문해 명부를 열람하는 것만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소액주주 연대는 회사 측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소액주주측은 11만명에 달하는 투자자 명단을 일일히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등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 3월말 기준 DB하이텍 소액주주 수는 11만1281명으로 발행주식 수의 67.59%를 보유하고 있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회사를 상대로 한 가처분 소송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상법 제396조에 따르면 주주는 영업시간 내에 언제든지 주주명부의 열람 또는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 주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도록 돕고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들이 명부 열람과 등사를 요구한 건 물적분할 반대를 위한 주주 결집을 위해서다. 5% 이상 지분을 모아 공시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소액주주연대에 따르면 8일 기준 지분 2.3%가량을 모집했다.

그러나 회사는 '소액주주연대'는 비영리단체로 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명부 열람 및 등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개인 주주 명의로 요구할 시 열람, 등사에 협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주주명부 열람 및 제공을 거부한 바 없다"며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고려해 이름, 보유주식 수, 주소 등 내용을 넣어 하드카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LG화학의 악몽' 재현될까...물적분할→주가하락 우려

이번 갈등의 시작점은 DB하이텍의 물적분할 검토 소식이었다. 앞서 지난달 12일 DB하이텍이 팹리스(반도체 설계) 사업을 분리한다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이 회사 주가는 15% 넘게 급락, 4만원대로 떨어졌다. 지금도 4만원대 초반에서 횡보하고 있다. 

사측이 밝힌 분할 목적은 각 사업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다. DB하이텍의 사업은 크게 팹리스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두 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설계와 생산 사업부가 붙어있을 경우 파운드리 고객사에서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며 "이런 우려를 피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물적분할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DB하이텍 투자자들은 핵심 사업 분리 조치로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우려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사태다. 지난해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하기로 하면서 연초 100만원대로 치솟았던 LG화학 주가는 LG엔솔이 상장한 올초 50만원대까지 내려앉았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측은 "주주총회 소집시 브랜드 사업부가 아닌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할 수도 있고 기존대로 브랜드 사업부를 분할하더라도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번 물적분할을 두고 최대주주인 DB가 지주사 전환을 위해 '의도적인 주가 낮추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DB는 지난 5월 자회사 지분 가치가 자산총액의 50%를 넘기면서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았고, 이후 지분 처분 계획이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결국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자회사인 DB하이텍의 지분을 현재 12.42%에서 30%까지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DB하이텍 지분을 30%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시가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5000억원이 넘는다"며 "회사가 시장에 줄 수 있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마침 물적분할 카드를 꺼내들면서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지배구조 개편 꼼수를 위한 의도가 들어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이 강해지고 있다"며 "회사는 주주들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공시되는 내용이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 포럼 측에서 DB하이텍의 지분이 큰 펀드들과 연락해 중지를 모아보는 등 내부적으로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주주행동주의 펀드 연합체다. 올해 4월 동원그룹이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을 추진했을 당시 소액주주들과 연대해 합병 중지 소송을 지원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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