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주목받는 이유에 "한류 붐 덕"
“한류 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소프트 컬처, 소프트 파워를 수출하기 위해 노력했고 수많은 작가와 감독·배우·가수 등 문화계에 계신 분들이 희생해서 이룬 성과인데 이런 것들과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베스트셀러 소설 ‘파친코’의 재출간을 맞아 방한한 이민진(사진) 작가는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요즘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저변이 확대된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까지 거의 100년에 걸친 재일 조선인 4대의 연대기다. 재미 교포 1.5세대인 작가는 해방과 한국전쟁·분단 등 민족 수난사를 통해 역사 앞에 외면당한 가족사를 그려낸다. ‘파친코’는 2017년 출간돼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33개국에 수출됐다.
그는 처음부터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직업으로 소설가가 되는 것은 엉뚱한 시도라고 여겨졌다. 지금은 완치됐지만 어려서부터 간 질환을 앓았던 그는 변호사 생활을 더 하면 간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파친코’는 열아홉 살 예일대 재학 시절 일본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의 특강에서 ‘자이니치(일본에 사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라는 존재를 들은 뒤 그가 꼭 쓰고 싶었던 인생 숙제와도 같은 소설이다. 일본 학생들의 ‘왕따’로 극단적 선택을 한 13세 재일 교포 중학생의 비극에 너무나 화가 났고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작가로 일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는 저항과 혁명의 행동이기 때문이죠. ‘파친코’도 위험한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쓴 거예요.” 이 작가는 “‘파친코’의 독자들이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얼굴만 봐도 50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며 “‘파친코’가 위험한 책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알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자신의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7년)’에 대해서도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라고도 했다.
그는 최근 3~4년 사이 한국의 독자들에게서 “이제서야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등의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또 한국 젊은이들이 ‘북클럽’을 만들어 삼촌과 이모·할머니 등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됐다”고도 했다.
이 작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 완결편 성격의 세 번째 장편 ‘아메리칸 학원’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 사람들이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며 “교육은 사회적 지위, 부와 떼어놓을 수 없는데 교육이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톨스토이를 읽을 때 러시아인이 되고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이 되듯이 자신의 독자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 작가는 간담회 말미에는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좋은 것만 발견하고 돌아가는 기분”이라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울먹였다. 그는 9일 오후 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사인회를, 10일 오후 7시에는 세종대 대양홀에서 북토크를 한다. 이후 12일 오후 2시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문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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